그러하니 이제 왕홀을 보더라도 남근의 의미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고 빅토르 위고의 다음과 같은 시편이나 읊어 보시라.

  여인들은 젊은 남자보다는 부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이는 아름답지만 늙은이는 위대하나니.
  (...)
  그리하여 젊은 사람들의 눈에는 불꽃이 보이지만
  늙은 사람의 눈에는 빛이 보이나니.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늙은이를 혐오하는 일종의 인종 차별이 만연해 있는데 도무지 그 흐름에 대항할 길이 없다. 지난날에는 늙어지면 권위, 위엄, 사랑을 얻었다. 오늘의 온갖 미디어들에서는 어린이 편집광이 유행이어서 그들의 눈에는 오직 불행에 처한 어린이밖에 보이는 게 없는 듯하다. 어떤 도시가 폭격을 당하면 오로지 어린아이들만 폭탄을 맞는 것 같다. 이 세계 어딘가에 기근이 들면 굶주리는 것은 오직 어린아이들뿐이다. 말할 것도 없이 늙은이들은 폭탄에도 굶주림에도 철통같이 방어되어 있다는 식이다. 그게 아니거든 차라리 우리가 그들에게 밀어닥친 무슨 액운인 양 신경 쓰인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낫겠다! 성적 공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황혼녘 변두리 동네에서 노인애(老人愛) 성도착증 환자들에게 강간당하는 가련한 노파들에 대해서 누가 말하던가?



-미셸 투르니에, <예찬>


[Ww] 거칠어지는 세상에서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노인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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