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글동네/리뷰 2008 2010. 4. 11.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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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와 함축 

-그림자를 판 사나이 바탕으로- 

 

  

 

 

1. 김영하, 그림자를 판 사나이 

 

김영하는 1995년 계간 [리뷰] 봄 호에 거울에 대한 명상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6[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시작으로 소설집 출간을 시작했다. 이전에 통신상에서 써서 출판한 [무협 학생운동]이 있으나 이 작품은 등단 이전으로 간주한다. 단편집은 [엘레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이후, [오빠가 돌아왔다] 5년 만에 출간했다. 그는 1996년에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시작으로 1999년 현대문학상, 2004년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2004년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김 영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문학 계열의 교육을 따로 거치지 않았음에도 많은 상과 세간의 기대를 받고 있다. 기대를 모으는 작가의 문체를 그의 최근 단편집인 [오빠가 돌아왔다]에 실려있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 통해 알아본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샤미쏘(Chamisso)의 소설의 제목이다. 샤 미쏘의 소설 내용은 한 사나이가 그림자를 악마에게 팔고 행운의 자루를 얻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행운의 자루를 얻어 부를 누리던 사나이는 그림자가 없어서 사람들로부터 멀어져간다. 사나이는 점점 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사나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다가가지 못하자, 악마는 다시 영혼을 팔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사나이는 유혹을 뿌리친다. 그리고 방황하다가 한 걸음에 8마일씩 걷는 장화를 얻어 세상을 돌아다니며 여러 생태에 대해 연구물을 내놓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김 영하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 이러한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 또한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김태환은 작품해설에서 그 남자가 잃어버린 것을 살고자하는 ‘열정’이라고 말한다.  

 

2. 이전 분위기와 대비시키기 

 

고소하고 맵싸한 냄새가 온 집안에 풍겼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카레를 부어 먹었다. 저민 닭가슴살은 부드러웠고 당근도 몰캉몰캉 씹는 맛이 있었다. 그러다 한때 밥을 먹던 사람들이 하나하나 생각나 울컥,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렸다.……(중략)……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묵묵히 카레와 밥, 닭고기와 익힌 야채들을 입속으로 퍼 넣었다. 

접시들을 개수대에 처박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화 자는 ‘매일매일의 흉사’에서 벗어나고자 신문을 끊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을 본다. 그 가 집에 돌아와 카레를 하는 장면을 자세하게 묘사한다. 카레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다듬는 장면부터, 음식이 완성되어 먹는 장면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집안에는 ‘고소하고 맵싸한 냄새’가 가득차고 밥에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난다. 입 안에서의 느낌도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 러다가 지진을 겪는다. 지진을 겪은 후, 밥 먹는 장면을 그대로 이어간다. 그러나 묘사는 확연히 달라졌다. ‘카레와 밥, 닭고기와 익힌 야채들’이라고 한 번에 모두 묶고, ‘입속으로 퍼 넣’는다. 지진 이전에는 모든 재료들이 분리되어 재료 각각의 특성을 묘사해주었다. 카레 중, 당근의 맛도 구분하여 다르게 표현했다. 지진 이후에 이들은 카레로 합쳐졌을 뿐만 아니라 ‘와’와 쉼표로 묶여 한 문장에 놓였다. 게다가 화자는 일정한 ‘맛’을 느낄 사이도 없이 이 음식들을 ‘퍼 넣었다’. 혼자서 밥을 먹는 자신의 상황을 너무도 처량하게 느낀 화자의 변화를 한 문장으로 화자의 심리 변화를 보여준다. 선택한 단어에서도 차이가 난다. 지진 전에는 ‘풍겼다’, ‘부드러웠고’, ‘씹 는 맛이 있었다’ 등 푸근한 단어를 선택했다. 지진 후에는 ‘묵묵히’, ‘퍼 넣었다’, ‘처박고’와 같은 과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단어를 선택했다. 

다시 숟가락을 든 후로 전화가 울리기 전까지는 단 두 문장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두 문장이 더욱 강한 효과를 전달하는 이유는 두 문장 이전까지 조성했던 문장들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소설 곳곳에서 보인다. 

 

그야말로 잘나가는 선남선녀의 만남이었다. 피로연장에서 갈비탕을 먹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와 미경과 정식이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는 그들의 행복을 빌어주었다. 

“애 낳으면 영세 받으러 갈게. 

미경이 농담을 걸자 아직 부제였던 바오로가 웃었다. 그러나 정식은 웃지 않았다. 

 

바 오로가 신학교로 들어가면서 미경과 헤어졌다. 신학교 교정에서 셋이 만난 이후, 다시 만난 자리가 미경의 결혼식이다. 화자는 이 날을 한 문단을 빌려 길게 묘사하고 있다. 많 은 하객과 아름다운 신부를 자세히 묘사했다. 신랑인 정식을 소개해준 사람이 화자이기에 정식은 화자에게 양복을 사주겠다고 했다가 화자가 거절하자 돈이 굳었다며 좋아하는 장면, 신랑과 신부의 입장 등 행복한 모습과 안정된 미래를 묘사하며 ‘선남선녀의 만남’이라고 추켜세운다. 이렇게 행복한 단어들로 문장을 이끌어 오다가 ‘그러나 정식은 웃지 않았다’며 한 문장을 던진다. 미경과 바오로의 관계, 그 리고 정식의 감정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전까지 행복하게 정식의 표정이나 주변이 묘사되었기에 이와 같은 문장이 더욱 두드러지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미경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우 리는 커피를 마시며 그녀가 새로 맡은 프로그램이며 내 소설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라디오에서 텔레비전 쪽으로 옮겼다고 했다. 교양제작국으로 소속이 바뀌어 좀 바쁘다고 했다. 오 랜만에 본 그녀의 얼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중략)…… 나름대로 명랑하게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연신 다리를 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미 경과 약속을 한 화자가 오랜만에 미경을 만나는 장면이다. 사람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상대방의 외모가 먼저 묘사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작가는 의도적으로 화자와 미경이 나누는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늘어놓는다. 그녀가 맡은 ‘프로그램’과 화자의 ‘소설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이는 두 사람의 직업과 관련된 대화이며 그들의 일상이다. 독자는 이러한 일상적인 대화를 대한 후라서 뒤에 화자가 꺼내는 그녀의 얼굴의 변화에 대해 더욱 심각하게 느낀다. 이는 '나름대로 명랑하게‘ 말하는 미경의 불안한 마음을 독자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대비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난 부분은 마지막 부분이다. 

 

그렇게 멋진 그림자가 생기면 사제관으로 불쑥 찾아가 얄밉도록 잘생긴 바오로 신부의 뒤통수를 한대 툭 치며 내 아이의 영세를 부탁하게 될지도 모른다. 멋진 세례명 하나 지어줘. 바오로 같은 거말고. 일년에 한번은 정식의 제사도 지내주리라. 자식도 없이 죽은 녀석이 아닌가. 그 생각을 하는 사이 거대한 새 그림자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간다. 하늘을 본다. 이상 하다. 달도 없는 밤에 웬 새 그림자. 몸이 다시 움츠러든다. 덕 분에 쓸데없는 상상은 끝. 나는 옷만 벗어던지고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운다. 

 

화자는 미경과의 결혼 생활을 상상한다. 그 생활은 무척이나 부산하면서도 활기에 차있다. 그 잃어버린 활기는 아이의 영세를 부탁하는 부분까지 이어진다. ‘불쑥 찾아가’고 ‘한대 툭 치’는 화자의 행동, ‘바오로 같은 거말고’ 다른 이름을 부탁하는 모습은 독자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 문단에서 화자는 희망에 차있다. ‘보여주리라’, ‘살아갈 수 있으리라’와 같은 다짐하는 모습과 ‘그림자가 생길지 모른다’는 희망에 찬 문장들이 화자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이렇게 이끌어온 활기에 찬 상상이 지나가는 그림자로 중단되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현재를 묘사한다. ‘그리고 운다’라는 문장 하나가 지니는 무게는, 앞선 긍정적인 문단과 확연히 대비된다. 한 문단을 희망찬 상상으로 이끌어 온 만큼 상반된 두 어절은 깊고도 큰 울림을 갖게 된다. 

 

3. 하나의 소재로 함축 

 

1987년도에 시위가 전국을 휩쓸 때에도, 대학 정원의 칠십 퍼센트가 교문 앞에 모여 있을 때에도 그는 도서관에 있었다. 그 의 유일한 낙은 소설읽기였는데 숫자와 재무제표에 지칠 때면 문학상 수상작품집이나 문예지를 읽었다. 

 

정 식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식은 집안의 부침이 심해서 더더욱 회계사 시험에 매달렸다. 그 러한 그의 상황을 시위가 전국을 휩쓸던 때, ‘도서관에 있었다’는 그의 모습으로 함축하여 보여준다. ‘칠십 퍼센트’를 부정한 사람들 중 도서관에 있었던 그의 모습을 독자는 금방 떠올릴 수 있다. 그 의 절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어 그를 지탱한 ‘문예지’를 언급한다. 이로써 앞서 설명했던 대비효과가 또 한 번 발휘된다. 이러한 일화로 정식의 과거와 그가 과거에 중요시했던 것들을 동시에 담아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미경은 자기 프로그램을 맡았고 정식은 점점 더 바빠졌다. 연말이라도 되면 부부끼리도 밥 한끼 같이 먹기 어려울 만큼 바빴다. 그때쯤부터는 나한테도 연락이 오질 않았으므로 나는 서서히 정식과 소원해졌고 당연히 친구의 아내와도 그렇게 되었다. 미경이 만드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프로그램 어디에서도 그녀의 냄새는 찾을 수 없었다. 고 등학교 때 자주 듣던 노래라도 하나 틀어주었으면 했지만 한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미 경과 정식이 결혼 후, 열정을 잃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삶에 치여 바쁘게만 살아가는 모습을 ‘점점 더 바빠졌다’에 이어 ‘바빴다’고 반복하여 효과를 더했다. ‘그녀의 냄새는 찾을 수 없었다’라고 한 후, 또다시 ‘없었다’를 반복한다. 앞 문장의 ‘바빴다’와 이어 ‘없었다’는 미경이 열정을 잃어가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효과와 더불어 작가는 과거사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이야기의 속도를 높인다. 소설의 과거사는 대부분 이러한 단정적인 문장과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문장들은 독자에게 상황을 금방 파악할 수 있게 한다. 글의 진행이 빨라져 필요한 전사를 독자에게 전달하면서도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미경과 정식이 화자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을 감정으로 전달하지 않고, 미경의 직업과 관련된 ‘프로그램’으로 압축하여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한다. 

 

() 지진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바둑 두는 사람, 자반고등어 맛을 보는 사람, 러 닝머신 위에서 뛰는 사람들만 나왔다. 뉴스채널도 스포츠 소식만 전하고 있었다. 

() 나는 점점 더 작가와 출판사 관계자들만 만나는 사람이 되어갔다. 

 

미 경과 전화통화를 한 후, 화자는 설거지를 하다가 텔레비전을 켠다. 그러나 지진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미건조한 상태를 ‘사람’의 반복을 통해 보여준다. 이들‘만’ 나왔다고 하며 이러한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은 평소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상태임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바둑 두는 사람’이 특이하게 독자에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이어 반복되는 ‘사람’이란 단어와 ‘사람들만’과 ‘소식만’이라는 한정시키는 단어가 독자에게 이러한 상황을 화자는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는 일상에 치여 점점 열정을 잃어가는 화자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소설가가 된 화자는 고등학교 때 만났던 친구들을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스스로 위안한다. 그 러나 그것이 화자가 원하는 방향이 아님을 이 문장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작가와 출판사 관계자들만’이라고 한정시킨다. 과거 활기찼던 모습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음을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단적으로 보여준다. 

 

4. 김영하만의 문체 

김영하는 이전 단편집인 [엘레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와 이 [오빠가 돌아왔다]가 상당히 다르다고 스스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소설 속 화자의 입을 통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내뱉는다. 그 말들은 화자가 처한 상황과 어울려 여러 가지 효과를 자아낸다. 

 

교정을 보다 문득 지금의 심사에 어울린다 싶어 끼워넣는다. 추운 날에 아내가 가자미를 굽고 있다. 온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 또 한고비 넘었다. 

 

단 편집의 <작가의 말> 마지막 부분이다. 김영하는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일상의 일부를 끼워둔다. 아무래도 그의 문체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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