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향

글동네/리뷰 2008 2010. 4. 1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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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협집과 방원의 처 성격 비교

 

 

1. 나도향, 물레방아 

1925년에 발표한 물레방아  문제 인물은 비슷하다. 물레방아에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방원의 처다. 방원이 사건을 일으키는 장본인이지만 그 원인은 그의 처에서 찾을 수 있다. 에서는 김삼보의 아내인 안협집이다. 두 사람 모두 여성이며, 이미 누군가의 아내이다. 그러나 그 아내라는 자리에 대한 관념이 사회 통념과 거리가 있다. 그 차이와 차이가 나는 이유, 두 가지가 문제의 발단이 된다. 그래서 이 두 인물의 성격은 사건의 진행, 작품 전체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다. , 이들의 성격에 대한 고찰은 바로 주제의 분석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2. 성에 대한 관념과 행동 방식

 

“점잖으신 어른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하면서도 그의 몸짓에는 모든 것을 허락한다는 뜻이 보였다. 영 감은 계집의 몸을 끌어안더니 방앗간 뒤로 돌아 들어섰다. 계집은 영감 가슴에 안겨서 정욕이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보면서

 

신치규는 ‘오십이 반이 넘어 인생으로서 살아 올 길을 다 산’ 인물이다. 방원보다 성적 우위에 있지 않다. 신 치규는 방원의 처를 호강시켜 주겠다며 물질로 유혹한다. 이에 방원의 처는 신치규에게 끊임없이 다짐을 받는다. 그녀는 변함없이 ‘처’이다. 누구의 처인가가 문제가 되는데, 그녀는 방원의 처에서 신치규의 처로 자리를 옮긴다고 받아들인다. 신치규가 그녀에게 원하는 것은 그녀의 몸이고, 그녀가 바라는 것은 신치규의 재물이지만 두 사람 모두 그저 원하는 부분만을 거래하진 않는다. 결 혼이라는 사회 제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벗어나는 행동은 없다. 물론 그 제도를 적극적으로 따르고 있지는 않지만 거부하고 있지도 않다. 방원의 처는 위의 상황처럼 신치규가 끈덕지게 그녀를 설득하는 상황에서도 사회의 통념에 따라 말을 한다. 몸짓은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 통념을 고려하고 그에 따라 말하고 있다.

 

‘돈만 있으면 서방도 있고, 먹을 것, 입 을 것이 다 있지.

 

안협집의 가치관은 이 한 마디에서 드러난다. 그녀의 모든 행동은 이에 따른다. 정조는 이미 안중에 없다. 그녀에게 있어, 성은 자신이 가진 하나의 기술이며 장사 밑천이다. 그래서 삼돌이라는 보잘 것 없는, 즉 얻어낼 재물이 없는 사람에게는 팔지 않는다.

방원의 처와 안협집은 재물을 원하여 자신의 성을 제공하는 면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행동에서 나타나는 적극성은 큰 차이를 보인다. 방원의 처는 가난에 대해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없었다. 신치규에 의해서 움직인 수동적인 인물이다. 그에 비해, 안협집은 스스로 성을 판다. 그녀는 재물을 위해 자신의 성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성에 대한 관념이 가벼움은 같으나, 그것을 이용해 부족함을 메우려는 행동은 안협집이 훨씬 적극적이라고 볼 수 있다.

 

3. 죽음에 대한 태도

 

() “싫어요. 나는 죽으면 죽었지 가기는 싫어요. 이제 나는 고만 그렇게 구차하고 천한 생활을 다시 하기는 싫어요. 고만 물렸어요.

() “뽕밭에는 한 번밖에 안 갔다. 어 쩔 테냐?

삼보는 더욱 머리채를 잡아챘다.

“이년, 한 번?

이번에는 더 때렸다. 안협집은 말한 것이 후회가 났다.

 

방원이 자신과 함께 갈 것을 권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방원의 처는 강하게 반발한다. 안 협집도 김삼보에게 추궁을 당하는 장면에서 악을 쓰며 대든다. 그들의 대화를 보면 방원의 처나 안협집 모두 상대에게 강한 듯 보이나, 그 결말에서 차이가 난다.

()에 서 볼 수 있듯, 방원의 처는 과거로 돌아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한다. 차라리 죽음을 달라고 말한다. 현재 상황에 대한 만족을 정확히 알고 있는 태도다. 현재에 만족하고 있으며 방원과 돌아간다면 가난한 생활이 되고 그 가난으로 자신은 행복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신치규 를 선택했을 때처럼 이는 방원의 처가 사회 제도를 여전히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도나 통념을 공개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꾀하고 있다. 방원을 따라간다는 뜻은 재물을 포기한다는 의미로 방원의 처는 받아들이고 있다. 안협집처럼 자신의 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

반면 안협집은 적극적으로 성을 활용해왔다. 그런 그녀이기에 현재 제도에 대한 관념이 부족하다. 그녀의 기준으로, 살아있다면 자신의 성을 팔 수 있으며 그렇게 다시 재물을 모을 수 있고 만족스런 삶을 쟁취할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섣불리 죽음을 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살아남으려 삼보에게 변명을 한다.

 

4.

두 인물 모두 정조를 재물보다 아래에 두고 있다. 그러나 방원의 처는 사회 제도 내에서 자신의 행동을 고려하고 있고, 안협집은 주변의 통념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이 러한 두 인물의 차이는 바로 결말에서 극대화된다. 방원의 처는 제도 내에 머물러 수동적이기에 죽음을 택하고, 안협집은 능동적으로 성을 팔기에 어떻게든 살아서 삼십 원씩 나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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