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글동네/리뷰 2008 2010. 4. 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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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단편소설의 인물 드러내기

-레디메이드 인생, 이야기, 치숙 통해-

 

1. 채만식의 단편소설에서 드러나는 풍자

 

채만식은 소설의 사회배경과 현실의 사회를 일치시켜 놓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을 풍자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비판하기도 한다. 소설 내에서 인물은 자신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작가는 먼저 소설에서 사회와 인물의 사회적 위치를 전달하고 인물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시각과 다른 인물들의 시각의 갈등으로 주인공의 생각을 풍자한다. ‘풍자’라는 기법이 채만식만의 것일 수 없다. 채만식만의 ‘풍자’를 그의 단편소설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찾아본다.

 

2. 주인공 정립

() 봄 하늘이 맑게 개었다. 햇볕이 살이 올라 포근히 온몸을 싸고돈다. 덕 석같은 겨울 외투를 벗어버리고 말쑥말쑥하게 새로 지은 경쾌한 춘추복의 젊은이들이 봄볕처럼 명랑하게 오고 가고 한다. (중 략)P도 전차를 잡아타고 교외나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크림 맛을 못 본 지 몇 달이 된 낡은 구두, 고기작거린 동복 바지, 양편 포켓이 오뉴월 쇠불알같이 축 처진 양복저고리, 땟국 묻은 와이셔츠와 배배 꼬인 넥타이, 엿 장수가 이 전어치 주마던 낡은 모자, 이렇게 아래로부터 훑어 올려보며 생각하니 교외의 산보는커녕 얼른 돌아가서 차라리 이불을 뒤쓰고 드러눕고만 싶었다.

() 한덕문은 허연 탑삭부리에 묻힌 쪼글쪼글한 얼굴이 위아래 다섯 대밖에 안 남은 누런 이빨과 함께 흐물흐물 웃는다.

 

()레디메이드 인생 일부분이다. 주인공 P K사장을 만나 인텔리 과정을 밟은 자신이 흔한 존재임을 깨닫고 나온다. P는 오랜 실직 상태로 변변한 차림새를 갖추지 못했다. 이 상황을 작가는 주인공이 서 있는 장소를 먼저 밝게 묘사하여 뒤에 나오는 P의 행색을 더욱 초라해 보이게 한다. P가 갖추고 있는 물건들을 묘사하는데 ‘크림 맛을 못 본 지 몇 달이 된’, ‘오뉴월 쇠불알같이’, ‘엿장수가 이 전어치 주마던’ 등과 같이 흔하지 않은 표현을 늘어놓는다. 이런 많은 사물에 대한 표현을 문장을 끊지 않고 쏟아내듯 연결하여 묘사하여 종합된 P의 외양을 전달한다.

() 이야기 서두 부분에서 한덕문을 등장시킬 때 쓰인 외양 묘사이다. 이 묘사 대목이 서두에서 쓰인 후, 내용은 한덕문이 논을 빼앗긴 과거의 얘기로 넘어간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설명에서 현재에 이르는 이야기가 끝난 후, 다시 현재로 돌아왔을 때 작가는 같은 묘사를 한 번 더 사용한다. 이 렇게 두 번 묘사가 이루어지는 까닭은 분명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개입되어 있음을 말한다. ‘허연 탑삭부리’와 ‘쪼글쪼글한 얼굴’, ‘다섯 대밖에 안 남은 누런 이빨’, ‘흐물흐물한 웃음’이 연결되어 종합적으로 그의 외양을 설명해주고 그의 성격까지 간접적으로 전달한다. 이빨이 듬성듬성한 모습은 한덕문이 그다지 신뢰할만한 성격이 아니며, 소설 내 그의 주장 또한 믿을 수 없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외양 묘사는 다른 인물을 드러낼 때는 쓰이지 않는다. 단지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투로 그 성격을 드러낸다. 이야기에서는 아예 쓰이지 않고 그나마 많이 쓰인 외양 묘사가 레디메이드 인생 M H인데, ‘통통하지만 키가 적어’라든지 ‘정객타입’, ‘사무원타입’이 전부다. 외 양 묘사가 작품 내에서 비중이 높게 쓰이는 것은 아니나, 주인공의 성격이나 상황을 잘 대변하여 보여준다. P가 많은 교육을 받은 인텔리이면서도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궁핍해진 상황임을 보여주고 아들을 인쇄소에서 기술을 배우게 하는 행동에 대한 근거가 되어준다.

 

3. 사회상과 대립된 주인공의 시각 드러내기

 

() 인텔리…… 인텔리 중에도 아무런 손끝의 기술이 없이 대학이나 전문학교의 졸업증서 한 장을, 또 는 그 조그마한 보통 상식을 가진 직업 없는 인텔리…… 해마다 천여 명식 늘어가는 인텔리…… 뱀을 본 것은 이들 인텔리다.……(중 략)……인텔리가 아니되었으면 차라리(원문에서 7~8자가량 삭제됨)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텔리인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도로 달아나오는 것이 99%. 그 나머지는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텔리요, 무기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 독립이 되기로서니, 가난뱅이 농투성이가 별안간 나으리 주사 될 리 만무하였다. 가 난뱅이 농투성이가 남의 세토(貰土) 얻어 비지땀 흘려가면서 일 년 농사지어 절반도 넘는 도지 물고 나머지로 굶으며 먹으며 연명이나 하여가기는 독립이 되거나 말거나 매양 일반일 터이었다.

 

외양 묘사는 독자에게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은근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주인공의 생각을 그대로 옮긴 부분은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각을 전달한다. 이는 보통 사회의 통념, 독자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대립하거나 소설 내 인물과도 대립한다.

()에서 P K사장과 편집국장 C를 만난 후 국가적 차원에서 일어났던 계몽 운동이 다 부질없다고 느낀다. 그 계몽 운동의 바람에 자신은 인텔리가 되기 위해 평생 노력하였는데, 지금 그 인텔리가 남아돌고 있다. P는 인텔리보다 노동자로 처음부터 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다른 원인을 짚어보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자신이 인텔리인데 출세하지 못한 것을 토대로 일반화하여 생각한다. P는 결국 교육은 쓸모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아들을 자신과 같은 길이 아닌, 노동자의 삶을 선택하게 한다.

이러한 P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작가는 그대로 따라간다. P의 생각을 외양 묘사하듯 구구절절 열거해 놓는다. 이 작품에서 P의 공상이나 상상이 여러 곳에서 드러나는데 이런 부분들은 모두 P가 현재 자신의 상황을 비하하고 있을 뿐임을 말해준다. 사회의 안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P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기보다는, P가 직접 사회를 비난하게 함으로써 P의 노력이 부족함을, 혹은 생각이 극단적임을 풍자한다.

()의 한덕문은 일본인 길천(요 시카와)이에게 논을 팔았는데 독립이 되면서 그 논을 자신에게 돌려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그 러나 작가는 그런 한덕문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후반부로 지연시키고 독립에 대한 한덕문의 생각을 먼저 서술하고 있다. 위와 같은 한덕문의 생각은 일반적인 사회의 의견과 대립한다. 독립에 대해 무관심한 소작농의 한덕문의 생각은 모두가 만세를 부를 때에도 그의 입을 다물게 한다. 소설의 시작에 한덕문이 논을 찾을 것이라는 예상으로 시작되는데 이런 한덕문의 생각이 사회와, 독자와 대립하면서 인물에 대한 반감을 일으킨다.

위의 외양 묘사와 인물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는 부분은 소설의 전반부에 쓰여 인물의 성격과 사상을 잘 보여준다. 기법 자체로는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인물의 사상이 사회의 일반적인 생각과 대립하여 독자에게 의아함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작품에 독자를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들의 좋은 언변과 절박한 사정이 그들의 생각을 정당화하고 독자 또한 이런 그들의 생각에 동조할 수 있지만 독자들이 겪어온 현실에서 그들의 생각이 엇나가는 듯한 느낌을 뿌리치기 어렵다.

 

4. 타인물과의 대립 구도로 풍자 -대화-

 

() “암만 팔았어두, 길천이가 내놓구 쫓겨갔은깐 도루 내 것이 돼야 옳지, 무 슨 말야. 걸 무슨 탁에 나라가 뺏을 영으루 들어?

“한생원한테 뺏는 게 아니라 길천이한테 뺏는 거랍니다.

“흥, 둘러다 대긴 잘들 허이. 공동묘지 가보게나. 핑계 없는 무덤 있던가? , 병신년에 원놈 김가가 우리 논 열두 마지기 뺏을 제두 핑곈 다 있었드라네.

“좌우간, 아직 그렇게 지레 염렬 하실게 아니라, 기대리구 있노라면 나라에서 다 억울치 않두룩 처단을 하겠죠.

“일없네. 난 오늘버틈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네. 제길, 삼십육 년두 나라 없이 살아왔을려드냐. 아니 글쎄, 나라가 있으면 백성한테 무얼 좀 고마운 노릇을 해주어야 백성두 나라를 믿구 나라에다 마음을 붙이구 살지. 독립이 됐다면서 고작 그래. 백성이 차지할 땅 뺏어서 팔아먹는 게 나라 명색야?

그러고는 털고 일어서면서 혼잣말로

“독립됐다구 했을 제 내 만세 안 부르기 잘했지.

() “너, 그런 경제학, 그런 사회주의 어디서 배웠니?

“배우나마나, 경제란 건 돈 많이 벌어서 애껴 쓰구 나머지 모아두는 게 경제 아니요?

……(중략)……

“고생을 낙으로, 그 쓰라린 맛을 씹고 씹고 하면서 그것에서 단맛을 알어내는 사람도 있느니라. 사람도 있는 게 아니라 사람마다 무슨 일에고 진정과 정신을 꼬박 거기다가만 쓰면 그렇게 되는 법이니라. 그러니까 그찜 되면 그때는 고생이 낙이지. 너이 아주머니만 두고 보더래도 고생이 고생이면서 고생이 아니고 고생하는 게 낙이란다.

“그렇다고 아저씨는 그걸 다행히만 여기시우? / “아니.

“그러거들랑 아저씨두 아주머니한테 그 은공을 더러는 갚어야 옳을 게 아니요?

“글쎄, 은공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 인제 병이나 확실히 다아 나신 뒤엘라컨……” / “바뻐서 원……”

글쎄 이 한다는 소리 좀 보지요? 시 치미 뚜욱 따고 누워서 바쁘다는군요!

 

이야기 내내 한덕문은 땅을 공짜로 돌려받으리란 기대에 부풀려 있었다. 작 가는 이야기를 이끌며 그의 사상을 드러내었고, 현실에 대한 그의 비관적인 시각을 보여주었다. 마 지막 ()의 대화에서 작가는 한덕문의 사상을 통념과 직접적으로 부딪히게 한다. 한덕문은 그의 국가관을 번복한다. 독립하여 그에게 논이 돌아올 것이라 예상되자 독립 만세를 외치려 했는데, 그 논이 돌아오지 않자 나라 없는 백성으로 돌아선다. 이러한 주인공과 주인공의 사상을 반박하는 인물과의 대화에서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채만식의 단편소설은 주인공의 중얼거림으로 끝나는 유형이 많다. 그리고 종반부에 이르러 주인공과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의 대화로 갈등이 고조되는데, 이런 표현 방식이 가장 두드러진 소설이 치숙(痴叔)이다. ()에서 서술하는 인물인 조카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풀려나 폐병을 앓고 있는 오촌고모부를 못마땅해 한다. 조카는 영리하고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하게 묘사된다. 자신의 정황을 제 입으로 설명을 하고 곧이어 아저씨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앞 서 살펴본 인물 생각의 직접적인 전달이 소설 전반에 걸쳐서 나타난다. 소설의 초반부를 읽어나가며 독자는 조카의 생각이 아주 현실적인데 동조하게 된다. 그러나 중반부의 내지인과 외지인을 구분하는 대목부터 독자가 생각을 달리하게 만든다. 조카의 생각은 통념을 서서히 엇나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끌고 온 소설을 작가는 후반부에서 조카와 아저씨의 대화로 양쪽 모두를 비판한다. 조카는 내지인이 지배하고 있기에 맹목적으로 닮으려 할 뿐이다. 어떤 비판도 없는 수용, 그것이 ‘경제’, ‘사 회주의’를 다이쇼에게 얻어들은 말을 그대로 말함으로 드러난다. 이것을 아저씨는 아니라고 하려하지만 조카의 생각은 굳어있다. 치숙(痴叔) 다른 소설보다 풍자가 한 층 더 있는데, 그것은 이런 아저씨에 대한 풍자다. 이야기를 이끌어온 조카는 물론, 사회주의를 운운하며 아무 일도 하지않는 모습을 마지막 대화로 드러낸다. 다른 작품에서 비판 대상이 주인공 하나였던 반면, 치숙(痴叔)에서는 인물 모두가 비판을 받는다.

 

5. 채만식의 풍자

 

채만식의 단편 소설에서 드러난 그의 풍자를 살펴보았다. 현실의 사회상을 배경으로 독자의 생각과 인물의 생각을 대립시키고 그것을 다시 무너뜨리는 과정을 통해 풍자의 효과를 현실적이고 강하게 만들었다. 채만식이 사용한 단어나 비유에 끌어 쓴 사물들도 이런 단편 소설의 풍자의 효과를 더하였지만, 큰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작가는 사회를 비판하고자하는 의식이 강했음은 비판·풍자하고자 하는 인물이 소설에서 두드러짐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그의 풍자는 분명한 대상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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