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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우울하면 항상 날씨가 흐렸다. 이 얘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분명 날씨가 흐렸기 때문에 내 기분이 안좋았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 내가 우울한 날이면 날씨가 흐렸다. 6 9. 아침부터 우울했다. 창문을 열어보니 구름이 잔뜩 하늘을 배회하고 있었다. 친 구가 저 위로 떠난 지 한 달이 되었다. 녀석이 떠나는 날, 발인하는 날, 날씨는 화창했지만 그 맑은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그리고 삼우제를 지내러 갔을 때도 흐렸다. 영정을 들고 학교를 돌 때도 흐렸다. 원래 10일에 천년의 수인을 보려고 했으나, 9일에 보러갔다. 날씨가 맑지 않았다. 비가 오진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녀석의 이야기를 했다. 우울했다. 날씨가 나를 우울하게 했는지, 내가 우울해서 날씨가 흐린 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을 때, 천년의 수인을 보았다.

 

안두희는 김구를 쏘았고, 장영구는 여고생을 쏘았다. 그리고 그들은 죽었다. 그들이 쏘았으나 그들이 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들에게 지시했고, 그들은 지시를 따랐다. 극을 보는 내내 난 전혀 그들의 책임에 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안두희는 분명 김구를, 장영구는 분명 여고생을 쏘았다. 쏘았기 때문에 죽은 이가 있다. 쏘았다. 살 아있는 자들이 죽은 자의 책임을 쏜 자에게 묻는다.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 내가 우울한 책임이 구름에게 있을까. 김구와 여고생이 죽은 책임이 안두희와 장영구에게 있을까. 날 씨가 맑았다면 난 기분이 좋았을까. 안두희와 장영구가 쏘지 않았다면 그들은 살아있었을까. 흐 려서 우울하다고 결론을 지으면, 안두희와 장영구에게 쏜 책임을 지운다면, 내 기분이 좋을까,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할까. 안두희가 장영구의 탄원을 올리며 죽어도, 이미 장영구는 죽었다. 난 슬펐다. 배우들은 연기하는 내내 상대방을 보는 대신, 관객을 보았다. 관객이 상대방인양 연기했다. 끊 임없이 말을 거는 것만 같아서 대답하려했던 순간도 있었다. 말을 거는 그들에게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죽은 사람 같아서 답답했다. 김구는 안두희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선생님.’ 안두희가 김구를 부르는 그 말이 무겁게 들렸다.

 

날이 밝을 때 들어갔으나, 나올 때는 어두웠다. 술을 마실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맨 정신이고 싶었다. 취하지 않고 그리워져서, 슬퍼져서, 울어지고 싶었다. 거리에는 행상인들이 많았다. 목 걸이를 파는 사람, 머리끈을 파는 사람, 선글라스 등 다양했다. 그 들이 사가라고 내놓은 물건에 시선을 주지 않는 대신,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햇빛도, 달빛도, 별빛도 없었다. 머리맡에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얼굴에는 상품을 비추려고 밝혀둔 백열등의 빛이 가득했다. 거 리가 환할 때는 그들의 얼굴도, 상품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해가 지고 어두울 때가 되자 그들의 얼굴은 환했다. 그들의 행복은 빛에 있지 않았다. 그들의 기쁨은 햇볕을 쬐는 데 있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은 그들이 파는 상품과 상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슬프지 않아 보였다. 문득 장영구의 외침이 생각났다. 무어라고 외쳤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순간 환해졌던 조명이 생각났다. 무대 중앙을 가득 메우던 흰 빛이 생각났다. 눈이 감기고, 입이 열려 그림자 가득한 그의 얼굴부터 환자복과 그가 밟고 있었던 바닥까지 환해진 그 빛이 생각났다. 연극을 보고 집에 돌아가 일기를 썼다. 연극에 대해서가 아닌, 그들이 군복을 입고 있었다고 썼다. 그 날의 친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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