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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超연극

연극을 보고 있다. 연극 내에서 거론되는 희곡(대본)은 분명 <카 페 신파>. 연극에서 바로 그 연극을 말하고 나아가 연극 전반에 관한, 연극인의 실상에 대한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등장한 딸과 노인은 관객이다. 연극을 보고 나와 카페로 들어선다. 우리가 보는 연극이 시작된다. 에 필로그에서는 오히려 희곡을 씀을 상징하는, 타자치는 소리가 들린다. 자기 자신이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매우 부끄럽고,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 그래서 이 희곡 또한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극이 연극에 대해, 바로 그 연극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더욱 어렵다. 그러나 솔직하고, 명백하다. 연극 이 연극을 이야기하기에, 연극의 진면모, 연극의 실상을 알 수 있다. 그 래서 이 超연극은 현실과 연극의 사이에 놓여있다.

 

2. 흐름

연극의 본막에 접어들면 카페 신파 안이다. 종업원과 마담이 등장하고 이어 카페 신파를 쓴 지환과 기획가 정현이 등장한다. 지환과 정현은 카페 신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종 업원과 마담의 이야기가 한 차례 더 나오고 배우들이 등장한다. 이어 평론가, 연출가 등이 등장하고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노인과 딸까지 무대에 나와 무대는 꽉 차게 된다. 전반부에 빠져나갔던 지환이 등장하면서 인물은 하나, 둘 무대에서 사라진다. 연출가와 종업원의 이야기가 끝나고 지환과 재영이 빠져나가며 카페 신파에는 다시 종업원과 마담이 남아 이야기를 마친다.

극 특성상 특별한 사건 전개가 없는 구조이다. 아무래도 작가는 인물들로 극의 절정을 구성한 듯하다. 인물들이 서서히 무대에 참여함으로 분위기는 고조된다. 여기저 기에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와 점점 몰입하게 만든다. 감정의 높낮이는 인물들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양으로 알 수 있다. 노인과 딸은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들, 현실 주변에 있는 이야기를 한다. 노인과 딸은 처음 관객으로 등장했지만 역시 배우이다. 이들은 다른 일반 연극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을 연기한다. 배우 1과 마담의 관계, 지환과 재영의 관계가 자칫 超연극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 요소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것은 극의 재미를 가미한, 즉 전반부에 지환이 이야기했던 ‘살’이다. ‘인물’을 말하기 위해 살짝 가미된 조미료와 같다. 超 연극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을 위한 릴리프라고 한다면 지나친 발상일까.

 

3. 연극, 사 람

연극을 보는 관객은 사람이다. 연 극은 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다르게 사는 사람을 보여주기도 하고, 비슷한 환경에 처해있는 사람을 보여주기도 한다. 희곡에서부터 연극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은 인물의 지칭에서부터 드러난다. 배우1, 기획, 평론가와 같이 분명한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름을 대사 앞에 쓰지 않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름 대신, 배 우의 실명을 거론할 수 있다. 배우들의 실명이 거론되면서 연극에 관한 진지한 대담으로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다. 배우들이나 연출가, 기획가가 살짝 자신들의 애환을 살짝 집어넣을 수도 있다.

냄새에 관한 이야기와 종업원과 연출가의 대화는 무엇보다 연극의 중심에 서 있다. 평론가는 냄새는 야만적이라고 한다. 야만은 동물의 특성이며 인간과 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평론가는 만들어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동경하고 지향한다. 그러나 배우 1은 다르다. 배 우 1은 야만의 힘을 동경하며 그것이 인간과 가깝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냄새가 어디에 가까운가라는 물음은 연극의 중심과 상통한다. 냄새에서 방황하는 그들의 대화를 정리하는 이는 다름아닌 노인이다. 노인 또한 배우이다. 노인은 연극의 위치를 백리향에 비유한다. 백리향이 오직 넓게 퍼지기 때문에 인간다운 것이 아니라, 노인의 인생이 담겨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는 노인의 위치와 같다. 관객의 입장이지만 그 또한 배우이고, 연극은 가상이지만 현실과 멀지 않다. 연극은 한없이 현실과 가깝게 표현하려하고, 배우는 한없이 해당 인물에 가깝게 표현하려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약간의 허구가 있다. 냄새는 야만스럽고 현대와 상반된다. 야만의 힘은 수준 낮음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노인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노인은 한 명의 사람이란 힘이 있고,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이 힘을 동경한다. 이 힘은 바로 사람과 비슷한, 사 람다움을 말한다. 극은 거짓되고 꾸민 배우이지만 인간은 현실에서 살며 꾸미지 않은 노인과 같다. 배우는 현실의 인물을 지향한다. 최대한 다가서되 닿지 않는다. 이 사상은 연출가와 종업원의 대화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연출가는 살짝 깨진 거울에 배우를 비유한다. 한 인물에 한없이 가까우나 약간 다른 인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배우이고, 극이다. 연출가의 말은 연극의 입장이며, 연극의 어려움이며, 연극의 힘이다.

중반에 나왔던 배우 1의 한탄이 생각난다. 예전에는 한 곳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녀석들이 지분거린다고.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현대 극형식에 대한 회의일까. 작가가 관객 참여 방식의 극형식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 만 이런 형식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있을 뿐이다.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일까. 단순 히 오래된 배우의 한탄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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