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나섰더니 글이 떨어져 있었다. 문장을 따라 걸었다. 단어는 빵집 앞에도 슈퍼 앞에도 떨어져 있었고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글은 도로에서 벽으로, 전봇대를 지나, 간판 밑과 반짝이는 유리 위에 거침없이 쓰여 있었다. 난 점점 글을 따라걷기에 빠져들었다. 달려오던 자전거가 피해갔다. 동네를 뛰놀던 아이들이 놀이를 멈췄다. 검은 아스팔트도, 붉은 벽도 모두 백지처럼 글자들의 배경일 뿐이었다.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도 있었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초조했다. 읽어야할 문장들이 사거리 저 너머까지 늘어 있었다. 낭떠러지에서 잡은 동아줄처럼 글들을 움켜쥐고 숨가쁘게 읽어댔다. 운율도 가락도 감상도 욕구도 지식도 위치도 목적도 아픔도 상실한 채 읽어댔다. 뛰기 시작했다. 이야기에서 뛰놀던 남자는 어느새 직업을 가졌고, 결혼을 하더니 아이가 나올무렵 죽었다. 더 빨리 읽었다. 스쳐지나가는 글자들이 앞다투어 머리 속으로 밀려들어왔고, 내 머리는 단어들을 밀린 빨래처럼 뭉뚱그려 한꺼번에 해석했다. 홀어머니 아래 키워진 아이는 엄마에게 대들었다. 그러더니 곧 내복을 사드리고 장례를 치뤘으며, 울었다. 숨이 가빴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아이는 좋은 여자를 만났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문장이 이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날 리가 없었다. 숨을 몰아쉬며 마침표를 노려보았다. 주변을 살폈다. 돌출된 버튼 위에 마침표는 자리잡고 있었다. 원통형 버튼의 옆면까지 샅샅이 살피다가 문득 이해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버튼을 눌렀다. 낭랑한 음악이 흘렀다. 그녀가 나왔다. 난 무릎을 꿇으며 꽃다발을 내밀었다. 향기가 아지랑이처럼 느긋한 기지개를 켰다. 꽃의 하품이 그녀의 얼굴에 닿아 미소를 일으킬 때, 나는 그녀에게 다음 이야기를 청했다. 

*달빛자취생
2010.02.06 00:00~00:32

모티프. 
아..... 그냥... 우리 집에서부터 그녀의 문 앞까지 하나의 소설로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몰아치듯 쓰는 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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