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은 예술작품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 뒤에, 거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지금은 그것을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좌충우돌하는 도시 환경에 폭격 당한 우리의 감수성 상태에서 예술작품만 무작정 양산된다고 생각해 봐라. 우리의 문화는 무절제와 과잉 생산에 기초한 문화다. 그 결과, 우리는 감각적 경험의 예리함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대 생활의 모든 조건 --물질적 풍요, 걷잡을 수 없는 혼잡함 -- 이 우리의 감각 기관을 무디게 만드는 데 한 몫을 거든다. 따라서 (다른 시대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감성, 우리 시대의 수용력에 비추어 비평가의 임무를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임무는 예술작품에서 내용을 최대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더 이상 짜내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내용을 쳐내서 조금이라도 실체를 보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에 대해 뭔가를 말하려 한다면 우리는 예술작품(그리고 거기에서 유추한 우리의 경험)이 우리에게 훨씬 더 실감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해야한다. 비평의 기능은 예술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어떻게 예술작품이 됐는지, 더 나아가서는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다.


*달빛자취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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