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자취생의 책볶음탕] 그림 읽기 / 이주헌, 진중권, 오주석


언어를 초월한 언어를 꼽으라면 역시 음악, 춤, 바디랭귀지(응?)

그리고 그림.


모 회사에서는 고흐, 밀레 등 유명 화가들의 그림으로 광고를 제작해서 회자가 되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 시간만 되면 도화지보다 친구 얼굴에 더 물감칠을 많이 했던 사람이라고 해도 김홍도, 렘브란트의 그림을 한 번쯤은 보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겨움, 무거운 울림 등 다양한 감정을 전해받는다. 화가가 방랑벽이 있었는지 씨름을 잘했는지 몰라도, 그 시대에 밖에서 그릴 수 있는 물감이 발명됐는지 몰라도, 심지어 그 그림이 서양에서 그려졌는지, 동양에서 발견됐는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가끔 특정 그림에 덜컥 마음을 꿰이게 된다. 

(아직 그런 그림을 못만났다면 쪼끔 불행한 거고.)


 발레와 클래식을 어려워하듯, 사람들은 미술을 어려워한다. 르네상스, 인상파, 모더니즘 등 어려운 용어들이 그림을 중심으로 마인드맵을 그려대, 거미줄처럼 위협적으로 보이기만 하다. 어떻게든 쉽게 다가서보고 싶지만, 그림 따위 미술 학원에서 '내 손 소묘'만하다가 울며 뛰쳐나온 아픈 기억이 방해해서 유화는 상상도 못한다. 하물며 학파 따위. 수능에도 안나오는 미술사 따위 기억할 리가 있나. 르네상스는 철학과 사상에만 영향을 준 걸로 기억하는 이가 태반.





 오히려 서양 미술은 그나마 자리가 괜찮은 편이다. 전통 궁중 음악보다 클래식이 그나마 인기가 더 많듯, 서양미술 전시회에 대한 수요는 꾸준한 편이다. 때문에 개론서나 소개하는 책들도 많다. 그 중 인기작가라면 단연 '이주헌'을 꼽을 수 있다. 이주헌 작가의 미술 소개는 꽤 오래 전부터 계속 되어왔다. 그의 책 중, 유럽 미술관 체험 시리즈는 가족여행으로 유럽을 다니며 미술관을 관람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당시 아이의 나이가 4살인데 2005년 개정판을 내면서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라고 밝혔으니 무려 10년. 아웃라이어다.


 


 가장 기초가 되는 저서는 그 이름부터 기초서적다운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시리즈다.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참 쉽다. 이주헌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쉬움'이다. 특히 이 책들에서는 한국에 널려있을 수 밖에 없는 서양화 감상초보를 위해, 당시의 역사부터 그리기 기법까지 세세한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게다가 이 두 권은 책 크기도 시원시원하게 큰 편이라 약간의 재정적 부담만 감당할 수 있다면 소장해두고 일견우일견(일견(一見) 할만하다. 

 

 다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약간 독자의 레벨을 상향조정해주었으면 어떨까 싶다. 그의 설명은 친절한데다가 자신의 감상까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기에 지루하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해당 책에서의 얘기다.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시리즈를 읽고 이번에 출판된 '지식의 미술관'을 읽는다면 왠지 재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른 책이며, 감상이나 그림이 많이 겹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중언이란 느낌은 가시질 않는다. 아마도 그 전에 나왔던 '러시아 미술' 소개서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은 참 신선했다.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닌, 이주헌의 소개로 러시아 미술을 읽는다는 점은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주헌은 그에 충실히 답했다. 그 신선함 때문에 '지식의 미술관'보다 이 '러시아 미술'에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생소한 영역을 친근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해당 그림을 게재하고도 감정이입하여 묘사하는 글들은 여전히 원본의 감동을 전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많이 팔렸을까?

 모르겠다. 솔직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미술을 궁금해 했을까.

 나만 알면 더 좋지.


 


 진중권은 이에 비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시각에서 이야기한다. '미학 오딧세이' 세 권으로 대중에게 미학의 이름을 새긴 미학자(응? 설마 이 단어를 미소년, 미중년 이런 계열로 해석할까?). 진중권은 미학을 이야기할 때, 이주헌과 노리는 독자층이 다르다. 일단은 영역도 약간 차이가 있다. 그래도 이번에 낸 '교수대 위의 까치'라는 살벌한 이름의 책은 미술을 중심으로 그의 감상을 풀고 있다. 그의 어투는 약간 거칠다. 편안한 이주헌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한다. 독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나 설명한다라기보다는 자신의 시각을 이야기한다. 하나의 그림을 보고 비슷한 감정과 사유를 떠올릴 수는 있다. 그 중, 진중권은 자신의 관점과 해석, 경험을 말한다. 독자의 생각은 따로 있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네...라고 얘기한다. 


 이주헌이 친절한 미술 선생님이라면, 진중권은 독자와 함께 미술관에 온 동료다. 그렇기에 그와 대화를 나눌 정도의 기량을 갖출수록 그의 관점을 이해하고 자신의 시각을 넓힐 수 있다. 즉, 이주헌의 책들로 기초를 다졌다면 진중권과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도 좋다는 얘기.


 


 여기에 동양의 미술을 이해하고 싶다면 단연코 이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래전에 읽고도 아직까지 리뷰를 쓰지 못한 책이지만 누군가 미술에 흥미를 갖는다면 그게 서양인지 동양인지 신경쓰지 않은채 일단 추천하는 책이다. 이 책은 오주석이 주부대상 특강을 했던 내용을 그대로 책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친근한 말투가 살아있다. 게다가 그냥저냥 그림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뒷얘기나 뒷받침하는 철학까지도 말하는데, 어찌나 감칠맛이 나는지 윤리수업까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을 구구절절히 이야기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자신의 감탄, 감상을 섞어 흥을 낸다. 덕분에 주부특강 특유의 유머로 그림이 바래지 않고 생생하게 독자에게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꾸준히 이 책을 찾는 이유는 친근함과 얼렁뚱땅 깊은 얘기까지 꺼내는 입담에 있다.


 그림을 생활로 밀착시키려 애쓰는 모든 분들께 박수를.


*달빛자취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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