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2


가로수 옆에 알을 심었다. 알은 그 어느 씨앗보다 빠르게 싹을 틔웠고 무섭게 자라 묘목이 되었다. 묘목은 주변의 가로수만큼 쑥쑥 자랐고, 주변의 나무들은 묘목만큼 쪼그라들었다. 반쯤 밀쳐진 주변의 나무들은 순식간에 자란 나무의 풍성한 그늘 아래로 들어가 서서히 구부러져갔다.
장성한 나무는 그 순간부터 더 자라지 않았으나, 비바람을 잔뜩 맞으며 잎을 늘렸고, 왕성하게 햇빛을 흡수했다. 나무의 잎은 넓적했지만 단풍이 들지 않았고, 그래서 떨어지지도 않았다. 오롯이 넓게 펼쳤고, 그것으로 더 많은 비와 햇빛을 받아먹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증발했다.
나무는 어떤 열매도, 꽃도, 단풍도 없이, 그늘과 바람에 지탱하며 살다가, 밤이 되면 아주 조금씩 증발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면 슬그머니 증발하는, 아주 가늘고 희미한 빛자욱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아주 먼 곳에서 유성이 밤하늘로 돌아가는 흔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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