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6. 27


부러진 가로등과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걸음을 멈춘다. 손에 쥔 젖은 편지는 알아볼 수 없게 뭉쳐 투명한 유리병에 넣는다. 선명한 의미를 펼치기 바라며 멀리 병을 던진다. 멀리, 깨지는 소리가 난다. 타인의 웃음 소리처럼 눅눅한 바람이 분다. 하나, 둘 우산을 펼치고 얼굴을 가린다. 찢긴 편지 조각처럼 우산에는 무늬가 있다. 우산 사이를 헤치고, 무늬를 읽는다. 익숙한 이름을 가진 무늬를 따라 걷는다. 가로등과 마주하고서야 깨닫는다. 하루가 지나도록 모든 우산은 스쳐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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