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2


양치 후, 거품을 뱉었는데 피가 섞여 나왔다. 이리저리 문질러 보았지만 붉은색은 사라지지 않았다. 곧 세면대에 스며들었고, 거울에 번졌다. 일단 밖으로 나와 화장실 문을 잠갔다.
입은 헹궜지만 칫솔은 여전히 손에 들려있었다. 한참 후, 전화가 왔다. 옆집 사람이었다. 벽에서 자꾸 피가 나는데 나보고 어떻게 좀 해보라고 닦달이었다. 처음엔 모르는 척했지만 옆집 사람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물러나질 않았다. 걸레를 들고 옆집을 찾아갔다. 옆집 사람은 문을 열고 턱짓으로 한쪽 벽을 가리켰다. 들어가보니 핏줄이 균열처럼 가늘게 한 줄 흐르고 있었다. 걸레로 문질렀다. 눌린 핏자국이 벽지에 퍼지더니 곧 사라졌다. 옆집 사람은 다시 턱짓으로 현관을 가리켰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처음엔 아랫집, 윗집, 동네가게에서 핏줄이 나타나더니, 어떻게 벽이 맞닿아있는지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발견되고, 어떻게 알았는지 정확하게 나에게 전화가 왔다. 일일이 찾아가서 닦았다. 고개를 숙이는 일은 하루 이틀뿐, 찾아간 곳 사람들의 구겨진 표정이 조금 더 구겨지는 일에 개의치 않았다. 들어가서, 닦고, 나왔다. 그 일은 점차 빈번해졌고, 사람들은 자주 나를 찾았다. 벽에 핏줄이 흐르는 일은 흔한 현상이 되어버렸고, 나에게 인상을 구기는 사람보다 음료수나 다과, 수고료를 대접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벽을 닦는 일은 내 직업이 되었다. 경쟁자는 없었다. 나만이 깨끗이 벽을 닦아낼 수 있었다. 점점 바빠졌다. 수고료도 엄청나게 올랐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찾았고, 나만 가능한 일이었기에 후계자 양성도 할 수가 없었다. 나날이 나는 부유해졌고, 시간은 말라갔다. 그러다 누군가 핏줄을 줄기 삼아 나무를 그려냈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따라하거나, 아는 화가에게 부탁하거나, 자기만의 느낌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선을 더하고, 색을 입히며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핏줄은 어느 벽에나 있었지만 모두가 다른 벽을 갖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제각각 그렸고, 나는 다시 벽을 닦으러 다닐 일이 없었다. 나는 잠긴 문을 열고, 거울과 세면대를 헌 칫솔로 닦고, 다시 양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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