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노트를 찢어 나무를 심었다. 뿌리에서는 볼펜으로 쓴 글씨가 흙을 움켰다. 줄기를 따라 화살표가 위를 향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사이사이로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는 동그라미가 여럿 끼어들었다. 밑줄은 가지를 지탱했고, 별모양이 굳어 껍질이 되었다. 접힌 모서리로 비를 피했고, 얼룩이 묻은 페이지로 가뭄을 견뎠다. 실패한 문장이 심하게 구겨져 봉오리를 맺더니, 형광펜으로 강조한 문장이 화사하게 피었다. 꺾쇠괄호로 묶은 구간을 따라 잎이 돋았는데, 햇볕에게 첨삭되어 빨갛게 단풍이 들었다. 눈이 내렸다. 화사한 문장도, 첨삭된 구간도 이미 흙으로 떨어진 지 오래. 눈은 밑줄이 부러질 것처럼 쌓였다. 마지막 눈송이가 밑줄 위에 내려앉자, 여백이 가득 젖은 나무는 단단하게 얼어붙었다. 아이는 노트를 다신 읽지 않겠지만, 나무는 여전히 내용을 품고 있었다.

@wo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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