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과 역사를 사상에 휩쓸리지 않고 

경험과 신념에 비추어 탄탄하게 썼다.


바탕이 되는 지식이 없더라도 끈기만 있다면 읽을 수 있도록, 신 선생님은 상세하게 풀어주셨다. 덕분에 책이 무겁다. 낱말이 낯설어서 무겁고 어렵게 느끼는 독자가 많겠지만 이와 같은 주제를, 이렇게 상세하고 깊이 있으면서도, 친절하게 풀어내는 책은 다시 찾기 어렵다.


몇 주, 몇 달이 걸리더라도, 2부부터 읽더라도, 하루에 한 장을 읽더라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면 마지막 장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신 선생님의 안녕, 인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교재를 낭독하고 전체가 조용히 함께 듣고 있는 교실 풍경은 공감 공간의 어떤 절정입니다. 여러분도 적막한 교실의 경험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교실의 경험, 대단히 특별합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읽는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16p

옛날에는 필독서가 있었고, 그 글을 기반으로 논쟁과 공감이 이루어졌다. 시대는 흘러, 세상은 좁아졌다. 문화 또한 세계로 확장됨에 따라 콘텐츠가 무궁무진하게 많아졌고 사람들은 다양한, 각기 다른 곳을 보기 십상이다. 사람수만큼 많은 책과 이야기 중에 바로 이 책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만큼 운명적인 일이 또 있을까. (물론 있지.) 함께 읽고, 감상을 나누는 기쁨은 더욱 찾기 어려워졌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인생이 있습니다. 각각 다른 인생 행로를 걸어갑니다. 그러나 비슷한 인생 행로가 의외로 많습니다. 세상의 변화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경로를 비슷한 것끼리 묶을 수 있습니다. [주역]에서는 64개의 패턴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64괘 하나하나가 그러한 경로를 보여줍니다. 

-61p

소학, 중용, 대학 등 과거 시험 필독서 중에서도 주역은 가장 나중에 읽을 책으로 꼽힌다. 역경易經을 많은 사람들이 점 보는 책으로 취급한다. 사실 64괘와 점 치기 전에 목욕재개, 대나무 고르는 법 등을 읽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시대상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면 주효한 얘기가 많다. 영 읽기가 껄끄럽다면 만화로 풀어본 주역 같은 책을 읽는 것도 진상 파악에 도움이 된다. 주역에서 풀이하는 괘는 대체로 관계론이다. 네가 지금 10대라면 이러저러한 상황일 때, 20대와의 관계는 이러저러하게, 50대와의 관계는 이러저러하게 하는 편이 좋다...라는 식이다. 현대의 처세술 책보다 훨씬 보편적이면서 심도있는 통찰을 보여주면서도 가르침의 폭이 넓다. 이 복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장점을 어떻게 전달해야하나 싶었는데, 신 선생님께서 아주 좋은 설명을 해주셨다.



임금이 "그 소 놓아주어라"고 합니다. 신하가 "그렇다면 흔종을 폐지할까요?" "흔종이야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느냐. 양으로 바꾸어서 제를 지내라"고 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중략) 소를 양으로 바꾼 이유는 양은 보지 못했고 소는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맹자의 해석이었습니다.

-107p

맹자



모든 사람들을 다 처벌해야 하는 법은 법이 아닙니다. 모든 통행 차량이 위반할 수밖에 없는 도로는 잘못된 도로입니다. 그곳을 지키며 딱지를 끊을 것이 아니라 도로를 고쳐야 합니다.

-136p

노자


그러나 장자가 전개하는 반기계론은 그 기사機事 때문에 기심機心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좀더 쉽게 하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이러한 기심이 생기면 순수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일을 쉽게 하려고 하고, 힘 들이지 않고 그리고 빨리 하려고 하는 이런 기심이 생기면 순수하지 못하게 됩니다.

-139p


소비와 소유와 패션이 그 사람의 유력한 표지가 되고 있습니다. 도시라는 복잡하고 바쁜 공간에서는 지나가는 겉모습만 보입니다. 집, 자동차, 의상 등 명품으로 자기를 표현합니다.

-148p

장자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 우환이 있다고 진단합니다.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고, 추위에 떠는 자가 입지 못하며, 일하는 자가 쉬지 못한다고 진단했습니다.

-162p


집에 불이 나기 전에 굴뚝을 수리하고 아궁이를 고친 사람의 공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불 난 뒤에 수염을 그슬려 가며 옷섶을 태우면서 뛰어다닌 사람의 공로는 널리 인정한다는 것이지요.

-168p

묵자


독서-독서-독서는 생각이 땅을 잃고 공중으로 공중으로 부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227p


바로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가슴'이 공감과 애정이라면 '발'은 변화입니다. 삶의 현장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230p


자기 변화에 대한 생각은 한참 후의 것일 뿐 하루하루는 구차한 임기응변이고 타락에 지나지 않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244p


위악이 약자의 의상衣裳이라고 한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입니다. 의상은 의상이되 위장僞裝입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일 뿐 그 본질이 아닙니다.

(중략)

엄벌과 공포는 사회를 경직시킵니다. 반대로 참여와 소통은 많은 사람들의 잠재력을 고양하고 사회를 역량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와 소통 구조는 자칫 썰매 위의 자리가 침범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그리고 사회란 원래 썰매의 위아래가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약한 개를 채찍으로 때려 왔습니다. 법과 정의 그리고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강자의 위선입니다.

-268p


문제는 위선이 미덕으로, 위악이 범죄로 재단되는 것입니다. 그것 역시 강자의 논리입니다. 테러는 파괴와 살인이고 전쟁은 평화와 정의라는 논리가 바로 강자의 위선입니다. 테러가 약자의 전쟁이라면, 전쟁은 강자의 테러입니다.

-270p


아우슈비츠를 운영하고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 보통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그것이 일부 괴물들에 의해서 자행된 것이었다면 얼마나 다행한 것일까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의 요점은 위선과 위악의 베일을 걷어내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들은 실패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 오디오와 비디오의 현란한 조명, 그리고 수많은 언설이 만들어 내는 환상 속에서 우리가 그 실체를 직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실패의 더 큰 원인은 이러한 장치가 아니라 우리들의 인간 이해의 천박함에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애증을 고르게 키워 가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노력이 부족함을 탓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276p


"없이 사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사정을 구구절절 다 얘기하면서 살아요? 그냥 욕먹으면서 사는 거지요."

-325p


문제는 부부 관계마저도 상대적 가치형태로 인식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적 가치로서 판단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의식 형태입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친정이 부자인가보다'라는 생각입니다. 가장 인간적이어야 할 인간관계마저도 화폐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천민적 사고입니다. (중략) 인간 역시 상품화되어 있습니다.

-350p


팔리지 않는 물건은 가치가 없습니다. 그 물건을 생산하는 노동도 가치가 없습니다. 그것의 생산과 관련된 기술이나 학문도 가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화폐권력'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일입니다. 공장이 도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과가 폐지되고 교수가 해직됩니다. 모든 것은 화폐가치로 일원화됩니다.

-352p


물론 소비를 통하여 행복감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를 통하여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인간적 정체성은 소비보다는 생산을 통하여 형성됩니다. 의상으로 인간적 정체성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포장된 것과 정체성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정서 자체가 포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56p


후기 근대사회는 과학기술의 발전,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축으로 하여 모든 인간을 욕망 주체로 만들어 놓습니다. 더 많은 소비와 더 많은 소유를 갈구하는 갈증의 주체로 전락되어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은 가치가 없습니다. 공자의 표현에 의하면 무지無知한 사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지를 해결했다기보다는 무지를 양산했다고 해야 합니다. 현대판 우민화, 황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369p


지남철의 여윈 바늘 끝처럼 불안하게 전율하고 있어야 하는 존재가 지식인의 초상입니다.

-403p


'독버섯'은 사람들의 '식탁의 논리'입니다. 버섯을 식용으로 하는 사람들의 논리입니다. 버섯은 모름지기 '버섯의 이유'로 판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이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자기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멀고 힘든 여정이라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426p


그리고 이 글 뒤로는 신 선생님의 바람願과 인사가 한참 이어졌다.


@wo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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