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이 드는 걸

나만 몰랐네






2015. 11. 6

어머니

낙엽을 줍지 마세요

고개를 드세요




2015. 11. 8

생일마다 사진을 한 장씩 태운다.

오래 타는 사진도 있고

연기가 많이 나는 사진도 있다

사진이 타는 모습을 지켜보지 말자

국이 식는다





2015. 11. 11

백발 속으로 눈처럼 하얗게

나는 사라지고자 한다


질척거리는 발자국을 뒤로 하고

백발 속으로 너는

사라지려 한다






2015. 11. 14

양초를 전혀 좋아하지 않아도

촛불이 꺼질 땐 슬프기 

마련이다





2015. 11. 19

방파제를 사방으로 치면

서서히 

썩을 뿐이다.

고인 물보다야 낫겠지만

별반 다를 것도 없을 텐데.




2015. 11. 22

남의 속은 커녕

내 속도 모르고

부어라

마셔라

먹어라

넘치면 토해라





2015. 12. 5

학교


들판 위에는 벽도, 문도 없었다

아이들은 막대기를 들고

흙 위에 선을 긋고 지웠다

아이들의 발자국 위에서

풀이 돋고 꽃이 피었다

메뚜기가 지나가고 비가 내렸다

들판은 마르기도 하고 얼기도 했다





2015. 12. 8

책상 다리는 딱딱해서 걸을 줄 모르고

가로등은 꼿꼿해서 하늘을 모르네

책상은 버려질 때가 되어서야 집 밖을 나서고,

가로등은 세상의 어두운 면 밖에 본 일이 없다

제대로 된 세상이 없다 -고 떠들겠지

어느 정도 맞는 얘기다, 그래도






2015. 12. 31

내 시를 읊는다는 건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밤이나 술에 취하지 않으면

혼자 있을 때가 아니면 도저히

내가 떠올린 시어라 

길에 뱉을 수 없다.






간밤에 꿈을 꺾어왔지만

아침 바람에 꿈잎 몽땅 날아가고

귀뚜라미 소리 들으려

저녁을 기다려도

꽃 피는 소리도 없는 가을,

대체 뭐가 남아서.



@wo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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