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송, 정상은 환상이다

어떤 소송
율리 체 (독일, 번역 장수미)
민음사
268p


건강은 정상이다.

이 간단한 명제가 법과 제도로 구현되고, 국가가 이를 지원한다. 국민은 항상 건강하며, 건강하기 위해 노력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병역의무처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은 영양을 고르게 섭취하고, 일정하게 운동해야 하고,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국민이 최적의 면역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유전자 파트너, 즉 결혼 대상을 소개해주는 국가기관도 있고 이에 반해 ‘병날 권리’를 주장하는 반국가단체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 주인공은 동생을 잃는다.

동생은 살인혐의로 잡혔고, 동생은 누명을 주장했으나, 분명한 증거가 있었다. 그래서 자살했다.

주인공은 상심했다.
상심은 건강을 해친다.
하지만 건강은 위법이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믿고 읽는 모던 클래식 시리즈. 다만 이 시리즈는 동일한 작가의 책을 여러 권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어서 드문드문 사는 편이다. 그래도 탁월한 책선정에 또 한 번 박수를.

건강과 행복이 대비될 줄이야.
굳이 자유를 들먹이지 않고도,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에겐 스스로를 정상으로 정의할 권리가 있다.

정상은 환상이다.
이것은 건강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57p
“내 고통은 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적인 일이라고요?” 조피가 적이 놀라 묻는다.
“들어 보세요.” 갑자기 미아가 판사의 손을 잡는다. 규칙 위반에 해당한다. 조피는 움찔하며 주위를 돌아보고는 머뭇거리며 피고에게 손가락을 맡긴 채다.
“아무도.”라고 미아가 말한다. “내가 겪는 일을 실감하며 이해할 수 없어요. 나 스스로조차도. 내가 개라면 나 스스로가 다가오지 못하게 짖어 댈 거에요.”


96p
“(중략) 노예처럼 육체에 사슬로 묶인 날 잠시 풀어주는 물질을 소비할 수 있어. 오로지 도전에 매력을 느껴 생존 본능을 무시하고 위험에 뛰어들 수 있어. 그냥 여기 있음에 불과한 현존재는 진짜 인간에게는 충분하지 않아. 인간은 자기 현존재를 경험해야 해. 고통 속에서. 도취 속에서. 좌절 속에서. 비상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온전히 결정할 수 있는 충만한 힘을 느끼면서.”


185p
나는 내 살과 피가 아니라 정상 육체라는 집단적 환상을 구현해야 한다는 몸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연상 도서

더 나은 삶을 정의함으로써 디스토피아를 만들어 버린 사회라는 점에서 닮은 작품.


- 1984, 조지 오웰
- 덕 시티, 레나 안데르손



@wo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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