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11

내 글이 어디로 갔나 바지 주머니에 넣었나 셔츠 주머니에 넣었나 늦은 밤 빨래통을 헤매나 어설픈 표현들은 가라 내 글은 어디로 갔나 젖은 영수증처럼 산산히 부서져 알아볼 수 없나 내 글은 차가운 물에 내 글은 거품에 내 글은 빨래통에서 정신 없이 뒤흔들리느라 알아볼 수 없나 그나저나 누가 빨래를 시작했을까 사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묻는데 내 글은 어디로 갔나



2012. 12. 20

다들 쓰고 전송해버린다. 펜 끝에서 주저하며 익던 마음의 계절은 갔다. 그래도 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천천히 쓰다가 거칠게 지우더라도 편지를 쓴다. 방에 앉아 다 쓰지 못할 편지를 쓴다. 겨울, 편지가 익는 계절.



2013. 1. 25

위로를 보낸다. 종일 빛을 견뎌야 했던 이들에게. 작고 불 꺼진 담벼락에 낙서하는 이들에게.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편지를 쓰는 이들에게. 밤과 글이 쌓인다.



2013. 1. 31

아침은 아직 먼데, 아이는 울고 있네. 아쉬움에 아지랑이 잡아보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아프리카에서는, 아픔에도 아름다움이 깃든다고, 아이는 아직 믿고 있네. 아주 작은 그림자도 아침의 증거라고, 아이는 아직 외치고 있네.



2013. 2. 6

고백하는 해와 기다리는 달, 주저하는 비와 무너지는 눈, 일어서는 바람과 돌아서는 구름, 손을 뻗는 아지랑이와 대답 없는 안개. 알 수 없는 날씨.



2013. 2. 13

거리엔 걷는 사람들 가득. 이마마다 행복이 반쪽씩. 기다리는 사람 반쪽, 인사하는 사람 반쪽. 만나서 이마를 맞댈 때마다, 행복이 하나 떠올라 햇볕에 하나 보탠다. 가끔 혼자서 거리를 걷는 사람과 해를 올려다보는 사람은 소포를 받는다. 낯선 주소로부터 알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이가 보낸 햇볕 반쪽이 이마로 내려앉는다.



2013. 2. 18

밤하늘 떠있는 별의 수, 간밤에 떨어진 낙엽의 수, 그동안 멀어진 발자국의 수, 그 위를 덮은 눈송이의 수. 바람이 눈을 가르며 지나간 횟수와 아이들이 뛰어놀며 떠뜨린 웃음소리의 횟수. 아직 그 자리에서 세고 있어.



2013. 2. 18

잠깐 잠들어 있으려 해. 물 끓는 냄비에 아무 것도 넣지 않으려 해. 밤이 와도 전등을 켜지 않으려 해. 바람이 불어도 머리카락을 내버려 두려고 해. 도둑이 들어도 문 열어 두려고, 개가 짖어도 귀 막지 않으려 해. 해는 여전히 지붕 위만 비추고, 달은 구름 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니까, 난 그저 잠들어 있으려고 해. 



2013. 2. 19

별이 빛나고 있어. 보는 사람 없어도, 달처럼 밝지 않아도, 꼭 쥔 아기 주먹처럼 힘껏 빛을 짜내고 있어. 더 힘을 내, 빛을 내, 내가 보고 있어, 별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힘껏 보내고 있어. 



2013. 2. 26  맛 1. 아이스크림. 

첫인상은 딱딱하고 차갑다. 말 걸기 어려우나 금세 누그러진다. 오래 마주하고 있으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시 예전 관계로 돌아가려해도 소용없다. 이쯤에서 간과하기 쉬운데, 이건 아이스크림일 뿐이다. 누구나 양손 가득 아이스크림을 가질 수 있다. 녹았다면 다른 아이스크림을 건네줄 수 있다. 겨울부터 여름까지 아이스크림은 누그러지기 마련이다.



2013. 3. 29

어느 동산에서는 꽃이 사람을 기다린대. 기다리다 지치면 잠시 시들었다가, 발자국 소리에 번뜩 피어나기를 반복한대. 누군가 찾아와 잎사귀 끝에 걸린 이슬같은 눈물을 흘릴 때면, 꽃잎으로 받아내어 차곡차곡 모아둔대. 그 동산에서는 일년에 한 번씩 비가 내린대. 그 비는 아주 따뜻해서 눈을 녹인대. 그 빗방울이 어디서 오는지 과학자들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지만 꽃들은 모두 알고 있대. 그 동산에서 꽃이 아직 기다리고 있대.



@wonwoo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