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렸다. 소년은 마지막 편지를 놓아두었던 벤치 앞에 섰다. 바닥에 편지가 떨어져 있었다. 집어들었다. 뺨에 가져갔다. 읽은 사람이 얼마나 오래 편지지를 쥐고 있었는지, 소년은 그 온기를 잴 수 있었다. 차가웠다. 내리는 눈을 피해 편지지를 두 번 접어 품에 넣었다. 손을 펼치자 낱말 위로 눈송이가 내렸다. 천천히 앉아 살며시 녹았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낱말을 품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 눈이 많이 내렸다. 소년은 낱말이 손에서 모두 흘러내리도록 손바닥을 활짝 펴고 기다렸다. 눈이 벤치를 덮을 때까지도 소년의 손은 겨울꽃처럼 그대로였다.

 눈은 비와는 달리 아주 천천히 내렸다. 눈송이가 물방울이 되어 흐를 때마다 소년의 손은 서서히 얼었다. 낱말이 다 떨어질 즈음, 소년은 움츠릴 수 없는 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이 따뜻해져도 펜을 쥘 수 없었다. 소년은 삐걱대는 의자 위에서 펜을 한참 쳐다보았다. 펜의 용도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해가 져도 불을 켜지 않았다. 그대로 앉아있었다. 어디에서도 눈이 밟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소년은 잠자리에 들기 위해 일어났다. 옷을 갈아입다가 외투에서 삐져나온 편지를 보았다.

 잠자리에 누워 편지를 폈다. 딱딱한 낱말들이 얼굴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얼굴에 얕은 생채기가 났다. 소년은 참았던 소리를 지르며 빈 편지를 찢었다. 편지 조각과 낱말들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밤이 이불에 가득 스며들자 새벽이 왔다. 소년은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을 모아 유리병에 담고 코르크 마개로 틀어막았다. 편지지 사이에서 쓰레기통을 찾아 펜을 버렸다. 유리병을 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그리고 유리병을 힘껏, 아주 힘껏 던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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