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냄새로 이미 방은 가득했다. 지나치게 많이 쌓인 종이들이 소리를 먹는 바람에, 소년의 방은 언제나 조용했다. 결국, 편지를 쓰면 쓸수록 편지에 몰두했다. 편지를 전하기 위해 밖을 나설 때면 같은 시간에 같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리를 걸었다. 그 거리에서 모든 만남이 그렇듯, 소년은 편지를 받을 한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다. 다른 시각, 다른 공간, 다른 음악 위에서 소녀와 마주쳤다. 소년은 시계를 소녀와 만난 시각으로 바꾸었다. 소녀가 머리를 묶던 오전 10시, 한 번도 돌아보지 않던 오후 3시, 손사래를 치던 오후 5시, 멍하니 커피를 마시던 오후 7시.

 소년은 소녀의 뒤를 쫓거나, 미리 가서 기다리지 않았다. 준비한 편지를 직접 전하지 못하는 나날을 다행이라 여겼다. 소녀가 오르던 돌계단 위, 망설이던 건널목, 친구와 큰 소리로 웃던 가게 앞, 모습을 감추던 골목, 한숨을 쉬던 벤치에 소년은 편지를 놓았다. 그래도 좀처럼 편지는 줄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는 만큼 방은 편지로 덮였다. 소년은 편지 위에서 자고, 편지 위에서 편지를 썼다. 편지 위에서 밖을 나섰다가 편지 위로 돌아왔다. 편지 위로 편지가 쌓일수록 밖에 나가기 위해서 많은 절차가 필요함을 실감했다. 처음에는 편지 사이로 옷과 모자를 찾는 수준이었지만, 점점 그런 것들은 물론이고 샤워기와 비누를 찾기도 힘들어졌다.

 이윽고 편지로 덮여 신발장마저 찾을 수 없을 때, 소년은 이대로 살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입고 있던 옷의 실을 풀었다. 문가의 편지들을 한 움큼씩 집어들고 실로 묶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가 손에 묻었다. 손에 묻은 잉크가 실에도 묻었다. 소년은 편지를 묶어 창가로 던졌다. 전에 쓴 편지와 나중에 쓴 편지가 뒤섞였다. 창가로 가서 예전에 쓴 편지를 다시 추려냈다. 어디서 물기가 떨어졌는지 예전 편지는 아직도 촉촉했다. 

 반나절 정도 치우고 나서야 신발장이 보였다. 이제 햇빛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지 못했다. 소년은 신발을 찾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 편지를 헤집었던 양손이 낱말들로 가득했다. 오래전에 쓴 낱말과 새로 쓴 낱말이 같은 잉크로 손에 쓰여 있었다. 소년은 주먹을 꼭 쥐고 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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