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매일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편지를 썼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소년은 언제나 펜을 들고 다녔다. 편지지, 혹은 백지를 갖고 있지 않은 날이 더러 있었지만, 펜은 확실히 지니고 있었다. 휴지, 지폐, 정 없을 때는 손등에라도 편지를 쓰곤 했다. 떠오른 말을 머리 속에서 되뇌이다가 어느 정도 다듬어졌다 싶거나, 문장이 길어져 기억하기 힘들 때 내려적었다.

 누구나 그렇듯 소년도 쓰다보면, 상상하던 이야기와 담고 싶던 진심이 종이에 머물지 못하고 새어나갔다. 분명하게 자리잡은 글자들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아, 다듬고 다듬다보면 어느새 본심과는 동떨어진, 알 수 없는, 유치한, 되새김질하다 뱉은 낱말같아 보이는 적도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소년은 편지를 썼고, 실수로 엎질러 버리듯 쓴 글이라도 버리지 않았다. 그 낱말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소년의 마음과 상황, 아픔을 대변하려 노력했고, 소년은 그런 낱말들의 마음이 거칠게 퍼진 잉크에서 보이는 듯해서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소년의 하루는 간밤에 적지 못한 꿈을 적는 일로 시작해서, 알 수 없는 하루를 견디다가, 밤이 되면 글을 모아 편지지에 옮기는 일로 끝나곤 했다. 소년의 하루를,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일이 아니라 짤막한 시작과 끝이 정의했다.


 소년은 전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래서 나무처럼 볕을 그림자로 받아적거나, 거리에서 사람들을 피하며 발자국을 보았다. 아침, 가로등이 꺼지는 순간을 목격하면 저녁,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까지 곁을 지켰고, 그 사이에 맨홀을 따라다니며 새로운 별자리와 신화를 떠올렸다. 소년은 주변에 흐드러지게 떨어지는 이야기를 주워 편지지에 올렸다.

 소년의 방 한 켠에는 잉크를 가득 먹은 편지지가 날마다 쌓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역사를 소년은 쓰고 있었다. 어느 먼 미래에 열정적인 고고학자가 소년의 글을 발굴하여 지금의 생활을 추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미래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게 아니었다. 소년은 그저 편지를 쓸 뿐이었다. 먼 미래가 아닌 이 시대의 사람에게, 다른 나라가 아닌 자신과 같은 나라의 사람에게, 누구나가 아닌 바로 한 사람이 보기를 바라고 쓸 뿐이었다.

 소년이 쓴 편지로 집은 점점 채워졌다. 처음에는 한쪽에 쌓았으나 시간이 지나고 편지는 늘어갔다. 창문 앞에 쌓이던 편지가, 빨래대 위에 놓이고 책상 위를 점령하고 식사를 방해했으며 침대 주변을 서성였다. 소년은 모든 생활에서 편지를 무시하고 살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일부러 글을 모아 편지에 썼지만, 이제 편지에 쓰인 글이 곧 소년의 하루였고 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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