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파도 앞에서 모래로 제 몸을 쌓았다. 물에 닿아야 단단해지지만, 담그면 사라지는 몸뚱어리였다. 파도가 밀려오면 달아나다가, 쓸려 가면 좇아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아이 옆에 눈사람이 섰다. 아이가 파도를 따라 오가는 동안, 눈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굳게 둥근 다리로 서 있었다. 눈사람은 조금씩 말라갔고, 이내 파도 위에 쓰러졌다. 눈사람이 서 있던 자리와 쓰러진 자리에는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눈을 삼켰지만 파도는 딱히 커지지도, 드세지지도 않았다. 아이는 어림잡아 눈사람이 섰던 자리에 섰다. 눈을 감고 밤을 맞아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 누추한 시간에도 잠이 와 줄까. 아이의 머리맡에 이슬이 놓였다.
@wo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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