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면 연필이 가늘어진다. 너무 가늘어 머리카락처럼 얇게 선을 그린다. 까만 선이 켜켜이 산처럼 쌓이면 해가 타고 넘으며 불을 놓는다. 그렇게 불은 나뭇가지마다 번진다. 하얀 재만 날리는 겨울이 올 때까지 거세게 타오르는 이 밤을 가을이라 부른다.

@wonwook
 


바람의 소매를 잡고 물어보았어. 다리가 아픈가요. 올 때는 그렇지만 갈 땐 아니란다. 넘어진 적은 없나요. 올 땐 그랬지만 갈 땐 아니겠지. 누가 일으켜 주었나요. 뜨거운 수프 한 사발을 숨 쉬지 않고 한 번에 마시면 된단다. 누가 수프를 주나요. 수프가 끓을 때까지 넘어져야지. 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그건 묻는 게 아니잖니. 저처럼 붙잡는 사람이 많은가요. 난 너에게 불어온 바람이며, 너에게서 떠나갈 바람이란다. 제 옆에 있을 수는 없나요. 남아 있으면 바람이 아니겠지.


@wo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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