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누구와 함께 떠날 필요는 없다. 어느 휴일의 아침이라면 이유는 충분하다. 지도를 펼치고 그럴 듯한 곳을 짚는다. 길을 확인한다. 지도, 카메라만 있으면 준비 끝. 4월 13일의 아침, 여행을 그렇게 시작했다. 사람들이 아직 많지 않은 시각. 지도에 있는 조그만 해안가를 찾아 떠났다. 마을을 지나 공원에 도착했다. 공원에는 꼭 축구 골대가 있다. 땅이 기울어도 축구 골대는 세워져 있다. 산책하는 사람들은 검은 바람막이 후드를 뒤집어 쓴 낯선 동양인에게도 선량하게 인사를 건넨다. 내가 무서운 만큼 저들도 내가 낯설 텐데, 아침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의 무지에 선입견은 너무도 쉽게 자리 잡는다.
 인종차별. 그것은 특정 나라의 문화가 아니다. 지나가다 나에게 음료수를 뱉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길을 잃어버려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을 때, 그들은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아기를 산책시키던 남자가 있었는데, 나는 그가 나에게 위협받는다고 느낄까봐 길을 묻지 못했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물어보았다. 그는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활짝 웃으며 답해주고 엄지를 치켜올려 행운을 빌어주었다. 어떤 이는 저쪽으로 가서 버스를 잡고 운전수에게 물어보면 그 운전수가 화를 내며 요 근방이라고 일러줄 거라고 농담까지 섞어가며 말하기도 했다. 어느 곳이 사람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차별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성숙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저녁이면 어두워지는 시골. 테스코(TESCO) 앞에는 총을 차고 있는 경비가 있다. 어둠은 공포다. 속을 알 수 없다. 반면 아침은 분명하다. 위험한 사람이 성실하게 일어나 있을 확률이 적은 시각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른 시각에만 친절하다. 위협도, 공포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 도움의 손은 8854킬로미터 저 멀리 있다. 어느 휴일 아침? 천만에. 사람이 가장 없는 시간을 고르고 고른, 일요일 아침이다. 
 이른 시각을 잘 이용하는 것은 여행의 안전을 보장해줄 지도 모른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닌다면 어디, 누구의 경계심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 범죄수단으로 활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동물을 데리고 치밀한 범죄 계획을 꾸민다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만큼 현장에 -털, 침 등- 증거가 많이 남기 때문.)
 무서운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선입견. 영화로 봤던 그들의 폭력성. 수많은 여행후기가 말하는 의외의 사건들. 그것은 택시 괴담과 비슷하다. 밤의 택시는 위험하다라는 경고들. 안전하다는 얘기가 굳이 전해질 리가 없기에 더욱 부각되는 사건, 사고들. 우리는 여행 전에 그렇게 선입견을 쌓는다.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경계만 하면 아무 것도 얻어올 수 없다. 



 공원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흙을 밟고, 숲을 지나다가 갑자기, 해안가와 맞닥뜨렸다. 고속도로에서 천천히 밀려오는 바닷바람과 풍경에 익숙해서인지, 느정이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폭죽처럼 놀래킨다. 어서 뛰어오라고, 바로 여기 있다고. 사신의 손짓처럼 정답고 위험한 부름이 여기 있었다. 급경사다. 차근차근 내려간 그곳에 바다가 있었고, 바위와 절벽이 있었다. 아직 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은 바닷가. 비밀의 정원은 이런 곳에 있었다. 여행에서 나만의 공간을 찾고 나만의 사진을 가져오면 나만의 추억이 남아, 나만을 위로하는 장소로 남는다.


-빨간 통은 왠지 편지를 넣고 싶다. 이 사람들은 개똥을 어디의 누구에게 보내는 걸까.



@wo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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