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에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 거 같아요? 그 중에 이 자리에 앉고 싶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 거 같아요? 전부에요, 전부. 내가 답을 주는 사람이라구요. 난 안내자였어요. 사람들이 찾으려고 하는 모든 것을 찾아주었죠. 이 건물에는 사람들이 찾는 모든 곳이 있어요. 네. 엄청난 건물이죠. 뭐가 어디 있는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언제 누가 하는지 이런 것들을 알고 있어야 했어요. 아마 지금은 더 두꺼워졌을 테지만 천백삼십이 페이지의 건물 요약 안내책이 있는데 그걸 다 외웠다구요, 내가. 건물 안의 주소들, 가게들, 음식들, 상품들, 영화, 연극, 배우, 걸린 그림, 개관 시간과 폐관 시간, 직원들 이름과 부서, 자리 배치까지 다 외웠어요. 사람들은 와서, 묻고, 듣고, 가요. 그게 다에요. 화내는 사람도 있고, 우는 사람도 있고, 애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갈 땐 모두 웃으면서 밥 먹은 것처럼 속이 든든한 표정을 지어요.
 그런데 그 남자가 나타났어요. 선글라스 때문에 눈을 볼 수가 없어요. 사람과 얘기할 때 전 눈을 봐야해요. 그래야 질문의 뜻이 뭔지, 대답을 듣고 있는지, 이해했는지 알 수 있거든요. 눈동자가 안 보이면 물으러 왔는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어요. 게다가 그 남자는 묻지 않아요. 그 땐 상관없다고 생각했죠. 고개를 돌렸어요. 그 남자가 나타나는 걸 보고 고개를 돌린 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어요. 마주보고 있을 수가 없어요. 내 말이 이상해요? 지금도 앞에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묻고, 듣고, 가는데 그는 오기만 했으니까요.
 경비? 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죠. 그래서 묻지 않는 거에요. 물을 생각조차 하지 않아요. 경비가 그 남자를 데려간다고 했지만 그의 그늘까지 가져가진 못했어요. 그래서 다시 말했죠, 저 남자를 치워달라고. 경비는 손을 내저었어요, 건물 안에 솟은 것만 자기 소관이라고. 경비는 바닥을 내려다보지도 않았어요. 그림자가 있는지 없는지 상관 없었던 거죠. 어차피 자기 소관이 아니니까. 경비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도로 나갔어요. 
 그 남자는 제 앞에, 예, 거기, 거기 서서 저를 봐요. 네. 그게 다에요. 나무처럼 보기만 해요. 밀어내지도 않고, 당기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주지도 않고, 기대게 해주지도 않아요. 끔찍할만큼 가만히 있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법도 없죠. 계절을 타지도 않아요, 죽은 나무처럼. 그림자도 죽었는지, 해를 따르지 않는 그늘을 제 얼굴 위에 온종일 드리우고 있죠. 이젠 모르겠어요. 그림자가 왔는지, 그가 왔는지, 제가 여기 있었는지, 왔는지. 멍하니 있다가 밤을 맞은 가로등처럼, 어느새 산 너머로 밀려난 해처럼 전 이미 그의 그늘 아래 들어와 있어요. 마주봐도 딴짓해도 무시해도 치워버려도 여전히 거기 있어요. 네. 당신 앞에도 있겠죠. 모르겠어요. 이젠 모르겠어요. 하지만 당신에게도 있을 거에요. 확실하지만 제가 보장할 순 없어요. 전 더 이상 안내자가 아니니까요.

@wo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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