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여행을 떠나면 이런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 탓일 수도 있고 평소 손에서 놓아두어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설레임의 탓이 가장 크다. 눈에 익은 거리를 떠나니 모든 것이 새롭다. 마침내 도착할 곳은 어딜까, 어떻게 생긴 곳일까,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개는 있을까, 그곳에서는 고양이와 원숭이와 개가 모두 사이좋게 지내는 곳은 아닐까, 오븐에 앉은 빵마냥 조마조마함이 부풀어 오른다.
 이 설레임은 유년시절의 수많은 상상들, 미래에 대한 턱없는 기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이 되고 주변 사람들부터 지구에 이르는 만물이 나의 은혜를 입는다. 나는 당당하면서도 로맨틱한, 나름 현실을 반영한 영웅인 대통령이 되고, 사람들은 나를 지지하고 응원한다. 나는 갑자기 시대를 역행하여 도깨비 무리같은 적군을 수없이 넘어뜨리고, 홀로 포효하는 장군이 된다.
 그러나 이런 상상은 오래 지속하기 힘들다. 마음 한구석에 계속 품고 있을 수는 있지만 틈틈이 현실이 파고드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나 숙제를 할 때, 친구가 새로 산 신발을 자랑할 때, 옆집 아주머니께 인사할 때, 엄마가 씻으라고 소리칠 때 등등 무감한 발걸음이 쿵쿵대며 살얼음 같은 상상을 산산히 부순다.
 여행의 설레임은 유년의 상상보다 굳세다. 집을 나오며 무거운 짐을 끌다가 일단 교통수단에 몸을 실으면 여행의 절정인 설레임이 찾아온다. 여행하는 동안은, 적어도 길 위에서는 몸에 채운 안전벨트가 상상까지 붙들어 준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목적지는 분명 우리가 가진 환상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리라. 쉬러간다고 하지만 집에 누워있는게 훨씬 편하리라. 음식은 입에 맞지 않을 것이고 색다르다하면서도 두 번 다시 먹지 않으리라. 수많은 회의론들은 손에 쥐고 있는 표 한 장보다 뒷전이다. 왜냐하면 목적지가 일상과 멀수록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불편함이 커질 때마다 희소성은 곱절로 커진다. 희소성은 곧 우리가 여행을 하는 목적이지 않았던가. 한 번쯤 버뮤다에, 에베레스트에, 무인도에, 달에 가보고 싶지 않았던가. 생명에 대한 위험이나 비용부담 없이 그곳에 간다면 그 여행 직전의 설레임은 얼마나 클까.
 자동차, 버스, 기차, 비행기, 인력거, 수레, 두 발, 휠체어 상관없다. 새로운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은 설렌다. 그를 누군가 찍으면 이런 사진이 나올 것이다. 빛나는 상상과 두근두근한 마음이 질주하여 이렇게 보일 것이다. 설레임이 달린다.

@wo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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