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편리는 간단하고 편안한 리뷰를 추구합니다.
* 근데 이거 참 간단히 되질 않으니....



0. 가르침 & 배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말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와 통하듯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말은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와 일맥상통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엇'은 지식이다.
'어떻게'는 효율이다.
즉, 기존의 교육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쉽게 전달하는가가 목표였다.


가르치는 사람은 선을 긋는다. 
그리고 배우는 사람이 그 선을 벗어나진 않는지, 선을 따라 선끝까지 오게끔 만든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이 이해한 하나의 선, 하나의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가르치는 사람의 지식이 배우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
무지한 스승이 오히려 제대로, 더 많이 가르칠 수 있음을 증명한다.

54p
학생은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보고, 쉼 없이 비교하고, 늘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무엇을 보고 있니? 너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너는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니? 이렇게 무한히 말이다.
 그러나 이 무한, 이것은 더 이상 스승의 비밀이 아니라 학생의 걸음이다. 책은 완성되어 있다. 책이란 학생이 손에 쥔 전체다. 학생은 그 전체를 모조리 훑어볼 수 있다. 스승이 학생에게 숨기는 것도 조금도 없고, 학생이 스승에게 숨길 수 있는 것도 조금도 없다. 그 고리는 속임수를 쫓아낸다. 먼저 이 무능력 --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이해 안 된다 ....... --이라는 커다란 속임수를 쫓아낸다. 이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전체가 그 책 안에 있다. 이야기할 것만 있다.


1. 올바른 가르침, 효과적인 가르침


책을 읽다보면 무수한 의문점들이 솟아난다.

스승이 무지해야, 아는 게 없어야 (적어도 모르는 척해야) 잘 가르친다.
그렇다면 스승의 역할은 무엇인가?


설명은 무한 퇴행의 시작일 뿐이다.
그렇다면 책은 설명이 아닌가? 책과 말의 차이는 무엇인가?



모든 이의 지능은 평등하다.
모든 이는 관찰할 수 있고 비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배움의 목적은 무엇인가? 가르치는 데도 쓸모없는 배움인데?



아래처럼 더 물었고 답을 얻었다.

- 왜 학문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가? (통섭, 컨버젼스, 디자인 등)
- 왜 간단하면서도 좋은 공부법을 모두 이용하지 않는가? (공부법 = 이 책에서 언급하는 지능)
- 왜 열정, 의지, 꿈에 바탕을 둔 진로 선택이 중요한가?
-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가, 적게 읽어야 하는가?
- 인맥은 넓을 수록 좋은가?


호수는 변함이 없으나 간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다.
어떤 이는 자살 충동을 느끼고 어떤 이는 희망을 찾는다.
이 책을 읽으며 당신이 하는 질문과 내가 하는 질문이 다르기에 답도 다르다.

호수는 일부는 이렇다.
호수는 또다른 일부는 이렇다.

이 리뷰는
호수 전체가 아니다.
일부에 전체는 없다.

@wo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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