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 몇이나 십대의 기억을 온전히 갖고 있을까. 유년기에 탔던 비행기에 대한 기억은 아주 얕다. 소풍처럼, 비행기라는 단어에서 오는 낯설음으로 부풀었던 마음이 광주와 서울이라는 치명적으로 짧은 거리 때문에 별반 감상도 없이 사그라졌던, 머나먼 나라의 뉴스처럼 아득한 기억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난 나름 컸지만 비행기는 자라지 않았을텐데 창밖에 자리잡은 비행기의 머리는 육중해보였다.
 우중충한 날씨였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해서 언제 비행이 취소되어도 어색하지 않았지만 창문 너머는 달랐다. 먹구름은 멀었고 비행기의 머리는 고사상의 돼지머리처럼 존재감이 컸다. 어찌나 믿음직한지 옆으로 뻗어있는 날개가 굳이 비행에 필요치않아 보였다. 날개에 매달린 엔진은 그가 갖고 놀던 장난감 같았고 멀리 솟아나온 꼬리 날개는 상어의 지느러미처럼 위협적이었다. 행차를 준비하는 정비공들이 그가 갖고 노는 엔진보다 작은 차를 타고 주변을 점검했다. 그는 지상에서 하늘까지 지배하는 활주로의 제왕이었다. 이 제왕과 함께 할 영광이 나에게도 마침내 주어졌다.


 처음 들어서는 건물에서 가장 조심해야할 것은 문이다. 문을 넘으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 다른 세상을 이어주는 것이자, 갈라놓는 것이 문이다.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품고 우리 앞에서 넉살을 떠는 문들 중 조금이나마 친절한 문은 유리창인데 그 너머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 친절한 문이 안내하는 저편은 대체로 가면 큰일나는 곳이다. (물론 백화점 입구의 투명하고 커다란 문을 포함해서.) 문을 넘을 때 변화가 가장 극심한 곳 중 하나가 공항이다. 공항에서 문을 넘으면 새로운 나라로 넘어가게 된다. 내가 알던 사람들, 걷던 거리, 이용하던 가게, 지하철과 자동차 등 모든 익숙한 것과 결별한다. 그래서 공항이란 건물은 비행기의 문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많은 문을 세워놓았다. 각 문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무엇을 막고 무엇을 보내는지 알지 못한 채 우리는 되도록 빠르게 문을 넘는다. 그런 우리의 뒤를 미는 것도 문이다. 우리 눈앞에서 수없이 닫는 모습을 보이는데다가, 우리는 저 문이 여러 사람을 내동댕이 쳤음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문에게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우리가 문을 넘는 원동력이 된다.
 비행기로 들어서는 마지막 문 앞에는 대기의자들이 널려있다. 집안의 소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한 의자다. 그런데도 의자를 만나면 내처 걷던 발걸음을 이 의자 앞에서 멈춘다. 앉는다. 창밖으로 비행기가 보인다. 하늘이 보인다. 문을 넘던 다급한 마음이 줄어든다. 저 마지막 문을 넘으면 저 비행기를 타고 저 하늘을 지나갈 것이다. 한 비행기가 구름 너머로 멀어진다. 안녕. 우리는 우리를 보내며 남겨진다. 의자 위에서 떠나는 우리와 남겨진 우리가 격렬하게 부둥켜 안고, 또 부딪힌다. 결국 떠나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 문 앞 의자에 망설임이 머문다.

@wo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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