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불안

33p
 아테네를 출항한 두 번째 배는 온 힘을 다해 첫 번째 배를 추격해 결국 도륙을 막을 수 있었다. 이 경우 노출불안은 신중한 토론, 현명한 충고, 민주적 수단,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한 가지 요소로 인해 억제되었다. 바로 '상상력'이다. 한 주제, 한 범주 안에 속한 대상들 간의 다양한 차이를 식별해낼 수 있는 상상력,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마지막 요소였다.

40p
 가족적 차원에서는 부모, 국가적 차원에서는 대통령에 비견할 수 있다. 지도자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을 때 당사자만이 노출불안에 시달리며 그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추종자들 역시 지도자의 오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지도자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은 그를 지지한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 결론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실수를 인정하고 시정하는 고통스런 경험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지도자의 완전무결성에 대한 신화에 집착한다.
 노출불안이 최대의 피해를 초래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오류의 시인은 곧 나약한 모습을 노출하게 되는 것으로 오인되며, 이로 인해 오류를 범했음을 알아도 사람들은 그를 밀어붙인다. (...) 이러한 논리는 성공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실패보강함으로써 엄청난 실책을 범하게 된다.






원인혼란

67p
 남아프리카 피레네스버그 동물 보호지역의 젊은 수컷 코끼리들이 40마리 이상의 코뿔소를 죽인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이 보인 행동은 지나쳤다. 코뿔소를 살해하는 것은 코끼리들의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젊은 수컷 코끼리들의 행동은 걷잡을 수 없었다.
 연구자들은 나이 든 코끼리 다섯 마리를 무리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광포하게 날뛰던 젊은 수컷들은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70p
 대안요법은 복잡한 과정에서 한 가지 변수를 가려내지 않고 질병에 관한 환자의 경험을 전체적으로 탐색한다. (...) 달리 표현하자면 대안요법은 내부적, 외부적으로 가능한 모든 원인을 전체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만일 이 치료법이 환자의 상태를 진정으로 호전시킨다면 의학적으로 채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체요법들을 통해 밝혀낸 원인들을 또다시 해당질병의 유일한 원인으로 간주하는 원인혼란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원인혼란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열린 마음이다. 우리는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것이 불확실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평면적인 관점

113p
 워싱턴의 정책 입안자들은 호치민이란 인물에 대해 1차원적이고 단선적으로 파악했다. 외국의 통치로부터 자국민을 해방시키려고 투쟁하는 민족주의적 애국자인가 아니면 구제적인 혁명 원칙을 결합시킨 공인된 공산주의자인가라는 관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흑백논리로 그가 속한 진영을 규명하는 데만 관심을 쏟았다. 평면적인 인지함정은 그들의 상상력을 질식시켜 호치민이 양 진영의 특성을 모두 가진 인물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게 했다.





만병통치주의

147p
 만병통치주의는 특정 이론이 모든 대상에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신앙에 가까울 정도의 믿음이다. 어떤 경우에 잘 들어맞았던 이론을 실제로는 그것을 적용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외관상 유사해 보이기만 한다면 모든 상황에 적용하려드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례들을 그것이 귀속되지 않는 범주로 묶어버린다. 과거에 성공적이었던 이론을 적용하는 것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외관상 유사한 요소들을 고정된 범주화의 카테고리 속에 밀어 넣으려는 충동은 로시의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 만병통치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론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로 인해 초래되는 손해는 엄청날 수 있다.

150p
 러시아를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전환시키면서 우리 시대 최고의 경제 사상가들마저 만병통치주의라는 인지함정에 빠져들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경제학자들은 폴란드와 동유럽에서 성공적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이론을 채택하면서 러시아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그것이 러시아에서도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들은 후기 공산주의 국가의 원형을 파악하고 러시아가 그런 이상적 모델에 순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폴란드에는 시민사회의 기반이 탄탄했고, 가톨릭 교회와 연대노조가 그런 시민사회를 강화해주었던 반면 러시아에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시민사회의 개념이 없는데다 극도로 부패했기 때문에 경제 이행에 관한 자신의 이론이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정보집착증

176p
 물론 때로는 감춰두어야 할 비밀도 있기 마련이며, 어떤 정보는 공유하는 것이 경솔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보독점자들은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재앙을 모면할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시기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정보를 감춤으로써 얻는 이익을 과대평가하고 친구나 동료의 잠재적인 지혜가 지닌 가치를 과소평가한다.

192p
 드 란다는 이교도의 책들을 소멸시킨 것은 신의 뜻이라고 믿었지만 사실 자신의 선교 임무를 태만히 한 것이었다. 정보회피로 인해 드 란다와 부하 간부들은 자신들이 개종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에 관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드 란다가 마야에서 발견한 두루마리를 번역하고 연구하여 마야인들이 토착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연구했다면, 오히려 훨씬 더 성공적으로 그들을 개종시켰을 수도 있다. 그들의 종교, 문화, 학문에 관한 풍부한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했더라면 드 란다는 그리스도의 영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전략을 고안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드 란다는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약화시켰으며, 이로 인해 후임자들 역시 선교 임무를 수행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

210p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과도한 정보는 위험하며, 때로는 모르는 것이 상책이라고 믿곤 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위험천만인 발상이다. (...)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오히려 정신을 산만하게 만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정보의 양은 관련이 없다. 문제는 정보량이 얼마든 간에 그것이 갖는 관련성이다.



거울 이미지

239p
 거울 이미지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상당한 감정이입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예민하게 감지해야 한다. 감정이입은 이방인의 상황이 자신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을 통해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정태적 집착

257p
 그러나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폭스 뉴스 채널의 스타 방송인 션 해너티Sean Hannity는 지구 온난화 경고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해너티는 몇몇 과학자들은 한때 지구가 식어가고 믿었기 때문에 지구가 따뜻해지고 있다는 오늘날의 합의 역시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즉, 과학적 입장이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 "언제나 회의적인 저널리스트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 우리 회사의 저널리스트들 중에도 그 점에 회의적인 이들이 몇몇 있지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보다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이 CEO는 논쟁의 쟁점을 바꾸었다. 그는 기후변화에 대한 회의론자들을 정태적 집착에 매달리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한편, 기후 변화와 대결하는 사람들을 문제해결론자로 위치시켰다. 영리한 전술이었다. 회사는 에너지 절감책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직원들에게 재정적으로 보상해주는 후속 조치들을 잇달아 만들었다.





종합

294p
 처음으로 어떤 방에 들어가게 되면 (마이클) 메이는 그 방에 놓인 물건들, 의자, 책상 등을 손으로 만지면서 걸어 다녔다. 주변에서 소리로 구별할 수 있는 것들은 열심히 청각을 사용하는 등 눈이 멀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감각을 이용했다. 그와 동시에 메이는 시각적인 정보가 자신의 눈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도록 했다. 이것은 놀랄 만큼 공감각적이고 통합적인 접근법이었다.
 (...) 
 이 책에서 언급한 많은 실책들은 상당 부분 환원론적인 사고에서 기인한다. 실책은 사람들이 복잡한 상황을 단순화할 때 발생했다. 때로는 국가, 문화, 젠더 등에 접근할 때 가장 단순한 모델을 적용시킴으로써 그런 실책이 유발되기도 했다. 때로는 복잡한 사건을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환원시킬 때 발생하기도 했다. 때로는 자신들의 해결책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을 때 발생하기도 했다. 환원주의는 대단히 위험하며, 반드시 실책을 피할 수 있는 한 가지 단일한 해결책이란 현실 세계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성공을 보장해주는 단계별 지침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일반적인 지침은 있다.


(감정이입, 지배적인 견해에 도전하는 의지, 유연함, 새로운 정보를 흡수, 개방적 사고)


301p - 통째로 옮기고 싶음.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고들 한다.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당연히 좀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과연 이 말이 사실인지는 그다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실제로 지혜는 경험 하나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보다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는 성향을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을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현명해지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말하자면 경직된 사고에 빠져들지 않도록 경계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
 이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상황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곰곰이 성찰해보라. 우리들은 모두 쉽고 명쾌한 해답을 원한다. 이것이 인지함정으로 유도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wonwook
: 논리의 함정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것이 상상력이라니! 
: 동일한 분야의 다른 책들과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내 생각의 함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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